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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15. 2019

ADR은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하는 걸까?

편집은 단순한 '자르고, 붙이기'가 아니다

ADR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번 <로즈웰> 에피소드 작업을 하는 와중에 ADR이 추가되었습니다. 흔한 일입니다. 임시 ADR 작업을 위해서 PA인 모건이 와서 녹음을 합니다. 정식 ADR 녹음은 편집이 완료된 후에 진행되고, 편집 기간 중엔 임시로 ADR 녹음을 해야 하는데, 이때엔 함께 일하는 저희들끼리 서로서로 일종의 ADR 품앗이를 합니다. 이전 작품이었던 <오리지널스>에선 포스트 코디네이터였던 브루클린과 포스트 PA였던 켄달이 이를 많이 했고, <볼드 타입>에선 쇼러너인 아만다의 어시스턴트였던 니키타가 사실상 모두 했습니다. <볼드 타입>은 특이한 경우이긴 했는데, 아만다가 특별히 그렇게 하길 요청했었죠. 니키타가 배우 출신이었던 탓인지 ADR을 제법 잘하였던 데다가, 임시이긴 하지만 최대한 실제와 같이 녹음되길 아만다가 원했던 탓이었습니다. 다만, 작가실에서 일하는 니키타로서는 그 나름의 바쁜 일이 늘 있었고, 따라서 편집 일정이 시간에 쫓길 때면 이는 그리 편한 상황이 되질 못했던 기억입니다.


아, 그런데, 먼저 ADR이 뭔지 얘기해야겠네요. ADR은 Automated Dialog Replacement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는 후시 녹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에서 검색하니 이렇게 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화면을 먼저 촬영한 후에, 그 화면에 맞추어서 대화나 음악 따위를 녹음하는 일 
ADR을 하는 녹음실의 모습 (사진 출처: NPR)


그렇다면, ADR은 왜 하는 걸까요? 지금까지의 제가 경험한 것은 크게 두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야기를 강화하기 위한 크리에이티브적인 선택으로 하는 경우입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가장 쉬운 예로 촬영 현장에서 녹음이 잘 안된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네요. 빠르게 움직이는 촬영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이죠. 여러 명이 얘기하는 와중에 한 명이 어떤 대답을 했는데, 붐 오퍼레이터가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거나, 믹서가 미처 레벨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거나 할 수 있습니다. 또, 촬영장의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들이 너무 시끄럽게 지나가서 대사가 깨끗이 녹음되지 못한 경우와 같이 말입니다. 이럴 땐 ADR이 필요합니다. 또한,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배우가 발음을 틀리게 한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ADR로 이 부분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볼드 타입> 에피소드 중에 파리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이때 한 배우가 프랑스어 이름의 디자이너를 언급하는데, 아무래도 불어이다 보니 현장에서 제대로 발음이 안되어 후에 ADR로 고쳤던 경우가 있습니다.


편집 프로그램인 Avid에서 ADR 할 곳을 표시해 놓은 창입니다


이야기를 강화하기 위한 경우는 어떨까요? 편집을 하다 보면 '아, 여기서 A가 이런 말을 해야지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게 될 텐데'라거나, '여기서 B가 이런 말을 해야지 시청자가 오해 없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텐데'라고 느끼게 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앞서 <로즈웰>에서 모건이 이번에 ADR을 한 부분을 예로 들자면 이렇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마을의 전력이 모두 꺼져버린 상황에서 진행됩니다. 병원에 응급 환자가 들어오고, 경찰인 맥스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일련의 일이 지나고, 병원에 전력이 다시 들어옵니다. 이때 병원 지하에서 쓰러져 있는 맥스를 동료인 카메론이 발견하는데, 여기에서 원래의 대사 진행을 보면 이렇습니다.


카메론: 맥스, 맥스. 정신 차려.

맥스: 아, 내가 정신을 잃었었네. 전기 들어온 거야?

카메론: 응.


이 대화를 들으면 마치 마을 전체에 전력이 다시 들어온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전력이 들어온 곳은 병원뿐입니다. 만일 이를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바로 다음 씬에서 다른 곳으로 갔을 때 여전히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어떻게 된 거지 하고 혼란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시청자라면 금세 '아, 아까 그건 병원만이었군'하고 이해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시청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일은 피하려고 합니다. 시청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질문을 갖게 만다는 것은 시청자가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지만, 이것과 시청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잘 구별해야 하거든요. 시청자를 헷갈리게 하면, 시청자는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는데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선 이러한 불필요한 오해를 미연에 막고자 맥스의 대사를 추가하기로 합니다.


카메론: 맥스, 맥스. 정신 차려.

맥스: 아, 내가 정신을 잃었었네. 전기 들어온 거야?

카메론: 응. 그런데, 여기 병원에만.


자, 이제 시청자가 헷갈릴 여지는 사라지고, 이야기는 명확해진 거 같지 않나요?

카메론(왼쪽)에게 추가된 대사를 맥스(오른쪽)을 보여주면서 ADR로 넣어,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


다만, 가끔 ADR이 과도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그러게, 애초에 대본을 좀 잘 쓰지. 이제 와서 편집에서 다 고치려고 하네'라는 불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감독이랑 촬영감독이 영상 찍어올 테고. 에디터는 그냥 찍어온 걸 시나리오대로 붙이면 되는 거 아냐? 편집 그거 요즘 아무나 다하는 거잖아.

편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렇게 편집은 단순히 기계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여러 번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또, 갈수록 편집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해지고, 유튜버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편집 입문으로의 문턱이 많이 낮아지고 넓어진 게 사실입니다.


도대체 편집은 뭘까요?


사실, '편집이 뭐지?'라고 묻는다면 속시원히 저도 뭐라 설명을 못합니다. 이런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지만, 대답을 해놓고서도 나중에 제 대답을 계속 곱씹으며 '아, 그게 아닌데'라고 아쉬워했죠. 얼마 전 케빈 텐트와 카페에서 얘기하면서 불쑥 이 질문을 그에게 했더랍니다. 그도 웃으면서 그거 참 설명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기 생각엔 요리에 비유를 하는 게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가장 쉽지 않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재료가 준비되어 차려지면, 이 재료들을 솜씨 좋게 알맞게 잘 섞어 맛있게 원하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 말입니다. 재밌는 것은 다른 선배 에디터 분도 제가 이 질문을 드렸을 때 똑같이 요리에 비유하셨습니다. 아마, 저도 다음에 누가 또 저에게 '편집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요리에 비유해야 할 듯합니다.


'영화 편집'을 다음에서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옵니다.

영화 제작의 한 단계. 촬영한 필름을 극의 전개와 순서에 맞게 창조적으로 배열하여 하나의 완성된 영화 작품을 만든다.


저는 이 정의에서 '창조적'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글에서 본 ADR의 예로도 알 수 있듯이, 편집은 단순히 찍어온 것을 붙이기만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수많은 고민과 시도를 통해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작업입니다. 워낙에 많이 쓰여서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Editing is the Final Rewrie"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편집이 요리이든 쓰기이든 확실한 건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라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촬영되어 온 수많은 재료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섞고, 실험하고.... 또, 보다 나은 작품을 위해 이리저리 다시 써보고... 오늘도 수많은 편집실은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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