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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Feb 05. 2019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촬영장과 편집실의 연결끈

자꾸만 늦게 오는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리포트

월요일 아침. 평소와 마찬가지로 제 편집실에 들어섭니다. 이번 편집실은 지난번 작품 때와 비교하면 그 크기가 무척 작습니다. 하지만, 한쪽 벽에 달린 창문이 햇빛을 받아들여주어서 좋습니다. 게다가, 필요 없이 너무 큰 방보다는 이렇게 작으면서도 제게 필요한 것들이 자리하는데 아무런 문제없는 정도의 크기가 딱 좋습니다. 일에 필요한 컴퓨터, 모니터 셋, 믹서, 플로어 등 하나와 책상 등 하나, 소파, 그리고 일에 쓰는 문서는 물론 틈틈이 꺼내어 읽는 개인 책을 꽂아 놓은 작은 책장. 이 모든 게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지금의 방에 불만은 없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확인하니 지난 금요일에 촬영된 촬영본이 도착해 있습니다. 아비드로 클립들을 불러들이고 정리를 시작하며 필요한 문서들을 확인합니다. 카메라 리포트, 사운드 리포트.... 아, 가장 중요한 리포트가 도착해 있지 않습니다. 바로,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리포트(Script Supervisor Report)입니다. 


사실, 금요일 촬영분은 물론이고, 그 전날인 목요일 촬영분 리포트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작품의 스크립트 슈퍼바이저는 리포트를 하루는 보통이고 이틀 이상 늦게 보내는 일이 다반사여서 저희들이 편집실에서 일을 하는데 무척 애를 먹게 합니다. 몇 번이고 프로덕션 쪽에 이야기를 했지만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으니 무척 답답할 따름입니다. 


점심이 조금 되기 전, 함께 일하는 에디터가 문을 열고 물어봅니다. 


“목요일 리포트 아직도 안 왔어?”

“금요일 리포트도 아직 안보내줘서 아침에 프로덕션에 다시 한번 얘기했는데, 내일 아침에나 보낼 것 같다고 하네.”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 겪어 보네.” 


에디터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자기 방으로 돌아갑니다.  


당연히 모든 리포트들이 중요합니다. 카메라 리포트는 어떤 카메라로 어떤 씬의 어떤 테이크를 찍었는지, 찍을 때 카메라 렌즈는 무엇을 사용했는지 등을 알려줍니다. 사운드 리포트는 어떤 씬의 어떤 테이크에 사운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찍을 때 붐 마이크를 썼는지, 각 배우들에게 개별 마이크를 달아줬는지 등을 알려줍니다. 모두 필요한 일이 있는 정보들이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일 편집실에서 가장 중요한 리포트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역시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리포트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들어있나

스크립트 슈퍼바이저는 촬영이 이루어지는 동안 현장에서 스크립트 슈퍼바이저가 작성한 문서로서 일반적으로 크게 세 가지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Daily Progress Report, 혹은 End of Day Report라고  불리는 부분입니다. 여기엔 몇 시에 촬영을 시작해서, 점심은 언제 먹었는지, 그리고 촬영은 언제 끝났는지 표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날 어떤 신을 촬영했고, 혹시 이중에 씬의 일부만 촬영한 한 씬은 있는지, 찍기로 계획했었는데 찍기 못한 씬이 있는지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촬영된 시나리오의 페이지 수 등 여러 가지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날 무슨 촬영을 했는지 간단하게 정리한 한 장의 리포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날 어떤 씬을 촬영했는지 빨리 확인하는데 유용합니다. 또한, 나중에 촬영 내용에 대한 확인이 필요할 때 얼른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Editor Log입니다. 보통 표 형식으로 정리된 모습입니다. 여기엔 촬영된 씬과 테이크에 대한 간단한 설명, 사용된 카메라 롤과 사운드 롤, 테이크의 길이, 감독의 코멘트 등이 담겨있습니다. 바로 다음에 언급하게 될 Facing Page의 아주 간단한 요약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Facing PageLined Script입니다. 이 둘은 함께 쌍으로 다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Lined Script는 말 그대로 시나리오에 선을 그어놓은 것을 말합니다. 촬영장에서 스크립트 슈퍼바이저는 각 테이크가 시나리오 상 어디부터 어디까지 포함하는지 계속 체크하여 시나리오에 세로로 줄을 그어서 표시합니다. 편집실에서 편집 시 이것을 보면 어떤 테이크에 어떤 부분이 담겨있는지 찾을 수 있는 좋은 참고가 됩니다. 또, 여기엔 촬영 중에 대사를 바꾸었다면 어떻게 바꾸었는지 등과 같은 정보도 담깁니다.


이 Lined script의 해당 씬/테이크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알고자 할 때 바로 마주 보는 페이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이게 Facing Page입니다. Facing Page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기본적으로 Editor Log와 동일합니다. 다만, 설명 부분이 좀 더 구체적인 경우가 있고, 또 이것이 Lined Script와 함께 묶이는 경우 이렇게 다르게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Lined script와 Facing page는 보통 링 바인더에 정리가 됩니다. 이들은 각 씬 별로 해당 페이지가 서로 마주 보게 정리됩니다. 이렇게 되어서, 편집 시 필요한 정보들을 빠르게, 정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Facing Page와 Lined Script가 링 바인더에 정리된 모습


촬영장과 편집실의 연결끈

<제인 더 버진>에서 일할 때입니다. 시즌 촬영이 중반 정도에 이르렀을 때 스크립트 슈퍼바이저가 편집실에 찾아왔습니다. 모든 편집실 인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동안 제가 보내드린 리포트에서 혹시 개선하거나 더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나요? 제 리포트가 편집실에서 중요하게 이용되니까 여러분들의 요구에 최대한 맞게 작성하고 싶네요.” 


“굳이 이런 건 필요 없는데 하는 건 없나요?” 


저희는 이런저런 의견들을 내었고, 그는 진심으로 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모두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결코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스크립트 슈퍼바이저는 진심으로 자기의 리포트가 편집실과 촬영장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최대한 돕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촬영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전날 촬영되어 도착한 자료들을 정리할 때 ‘혹시 찍었는데 빠지고 안 온건 없나?’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항상 해야 합니다. 이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노트를 가장 먼저 확인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잘못된 부분이 보이면 카메라 리포트와 사운드 리포트를 확인합니다. 이게 확인되기 전까진 오늘 받은 자료가 모두인지, 빠진 건 없는지, 이름은 맞게 되어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편집에 들어갑니다. 여러 테이크가 쓰였습니다. 이중 어떤 테이크가 감독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때 확인할 것은 바로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노트입니다. Facing page를 확인합니다. 테이크 3을 감독이 가장 좋아했다고 표시되어있습니다. 아, 그런데, 계속 읽어보니 하지만 대사 마지막 부분은 테이크 2에서의 연기를 가장 선호한다고 되어있네요. 편집을 하면서 이 부분을 머리에 담아둡니다.


이상은 아주 간단한 두 가지 예였습니다. 에디터는 촬영장에 있지 않습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에디터는 편집을 하고, 연출자는 촬영으로 인해 시간이 쫓깁니다. 이때 스크립트 슈퍼바이저는 촬영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감독은 어떤 의도로 어떤 테이크를 찍었는지 등 각종 정보를 그의 리포트에 담아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지난주 목요일 거 방금 왔어.”


포스트 프로덕션 어시스턴트인 모건이 제 방에 와서 지난주 목요일 촬영분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리포트를 건네줍니다. 내일 준다더니 빨리 왔네요. 이제 금요일 분은 내일 오겠죠? 혹시 오늘 촬영분은 또 내일 안 오고 금요일 분량만 보내주는 건 아닌지 벌써 걱정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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