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가 만든 신뢰의 온도차
같은 리더십인데도, 왜 어떤 팀은 끝까지 버티고 어떤 팀은 마음부터 무너질까요? 제 경험상 그 차이는 ‘감사’가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만난 네 명의 리더는 그 차이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줬습니다. 감사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조직의 공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 봅시다. 단순한 리더십에 대해서 논하기보다는 리더십에서 감사의 역할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하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리더는 파트장입니다. 전형적인 거래형 리더였습니다. 열심히 하고 성과가 좋다면 보상을 잘해주겠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는 스타일입니다. 자기가 잘 한 점이 있다면 특별히 보고서를 써서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서 이를 수집해서 시간을 들여서 읽어보는 등 나름 공명정대하게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하는 분이었습니다. 이 파트장님은 감사를 표현하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피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아 저거, 의례적으로 감사하다고 말하는 거구나~" 생각할 정도로 형식적인 감사였습니다. 나는 잘한 것 같지도 않은데 듣게 되는 수고했다는 말을 남발했고, 어쩔 때는 옆 부서 사람이 실수했을 때도 감사하다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식적이라는 평가를 자주 들었죠. 마치 감사하는 문화를 전파해야 한다고 사내 리더십 교육 시간에 배우고, 실천했지만 진심을 담지 못해 역효과가 발생한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분을 리더로 두었을 때 생긴 문제점은 인간다움이 없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거래형 리더로 공명정대함을 강조하였기에 구성원들은 서로 친한 척했지만 경쟁이 심화되었습니다. 서로 가진 걸 공유하며 시너지를 일으키는 일이 적었죠. 힘을 합치면 빨리 될 일에 '이건 내 거'라는 마음이 더해지니 빙 돌아서 가게 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리더는 협력 없이 일이 처리돼도 수고했다며, 이 사람이 잘했으니 같이 박수를 쳐주자며 이야기했습니다. 겉으로는 보기 좋았지만, 전혀 좋지 않았습니다. 진심이 빠진 감사는 오히려 질투를 유발했습니다. 일이 되어가긴 했으나 잘 된다는 느낌은 없었죠. 분명 감사는 존재했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 리더는 임원입니다. 앞 서 말했던 파트장님 보다 상위 리더입니다. 이 분은 정말 엄청난 실력자입니다. 기술적인 지식이 정말로 많고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도 빼어났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카리스마형 리더였습니다. 자기가 가진 기술을 해자로 삼고 칼을 휘두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다만, 이 분은 앞서 말했던 카리스마형 리더와 함께할 때 조직이 가지는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감사가 없었던 거죠. 자기의 빼어남을 바탕으로 '나만 따르면 돼', '너희들은 생각해 봐야 나보다 못해' 이런 마음이 겉으로 마구 드러나니, 이분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구색 맞추기 식으로 따라갑니다. 하지만 구성원들끼리는 정작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애쓰면 무엇하나, 어차피 리더가 하고 싶은 대로만 다 하고 내 아이디어는 묵살하는데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팽배했습니다. 리더는 승리를 이어갔지만, 구성원들은 패배감을 느껴야만 했죠.
세 번째 리더 역시 임원입니다. 마찬가지로 카리스마형 리더입니다. 가진 비전이 엄청난 분이었습니다. 이 분이 가진 비전은 현실과 거리가 멀어 보여서 주변 부서들이 도와주기를 꺼렸습니다. 딱 들으면 옆 부서 팀장님들이 하는 말이 기억납니다. "쟤는 몽상가야, 딱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자꾸 하냐." 하지만, 이 리더님은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서 자기가 가진 비전을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만큼 추진력도 있었고,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있었던 거죠.
이 분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장 이상했던 것은, 외부, 내부 구성원들이 이 분을 바라보는 온도차입니다. 외부에서는 냉랭합니다. 돈 키호테 같은 몽상가로 치부하죠. 하지만 내부 구성원들은 똘똘 뭉쳐서 움직였습니다. 비전을 선포하고 내부 구성원들을 동기부여해서 움직이게 만들었죠. 리더가 외부에 설득하러 다니는 만큼 내부 구성원들도 함께 뛰었습니다. 정말 한 방향으로 움직여서 그의 비전이 우리의 비전이 되었고, 그 비전을 조금씩 움직여서 외부의 철옹성 같았던 방어벽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비전을 현실화해낼 수 있었죠.
비결은 무엇일까요? 앞 서 이야기 했던 두 번째 리더와는 다르게 '감사'가 함께 했습니다. 자기의 비전 때문에 고생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물적으로 심적으로 충분히 표현해 주었습니다. 구성원들이 서로의 마음을 인간적으로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충분히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회식을 그렇게 싫어하던 저 조차도 그 자리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당연히 분위기는 늘 최고입니다. 일 할 때 싸우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목소리를 높이며 이야기했지만, 우리들 안에서는 건설적인 토론의 현장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다양한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일할 때는 함께 치열하게 일하고, 쉴 때는 즐겁게 쉬다 보니 일하는 관계가 인간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함께 했던 팀원들과 헤어진 지는 이미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좋은 일이 있으면 다시 만나서 서로 축하할 정도로 끈끈한 관계가 되었죠. 한 팀원과는 매년 짧게 길게 여행도 같이 다니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 정도면 얼마나 관계가 잘 형성되었는지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일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던데, 감사가 더해지니 사람 사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분이 표현한 감사의 마음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어떻게 적더라도 충분치 않습니다만, 한 가지 일화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그러시더라고요. 우리 팀 이번에 고생했으니 다 같이 하와이 한번 가자고요. 경비는 다 자기가 대겠다. 가족들도 다 데리고 와라. 물론 이러면 당장 가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너무 비현실적이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무산되었습니다. 한두 주 지나니 다시 이야기합니다. 하와이는 과한 거 같다. 제주도로 가자, 가족들 다 데리고 와라. 이 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말렸죠. 결국 더 간소화돼서 강릉으로 가는 걸로 줄였습니다. 현실적으로 가족들 두고 구성원들만 가는 걸로 바꿨죠. 나중에 이 분이 회사를 나가고 난 뒤 만난 자리에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하와이 가자는 거 진심이었다고, 자기 예산도 다 짜놓았었다고요. 넌지시 말하시는데, 저게 진심이었구나 싶으면서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반면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리더가 정말로 우리에게 감사했구나, 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구나. 그래서 우리가 그런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거구나. 돈이나 여행을 가는 것은 핵심이 아닙니다. 감사하다는 진심을 표현했다는 게 중요한 거죠. 표현의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담는 것입니다.
사실 그때 하던 프로젝트들은 그분이 회사를 나가고 난 뒤에 더 크게 성공했습니다. 카리스마형 리더로 제시한 비전이 리더가 사라졌다 할지라도 구성원들에게 남았고 계속해서 개발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물들은 반도체 분야 탑티어 학회 두 군데에 결과가 발표되었죠. "정말로 저게 되는 거였다고?"라고 반응했죠.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기술적인 역량, 팀원 구성, 환경, 운, 전략 등 다양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해야 하는 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로 만들어진 인간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리더가 사라졌더라도 이 프로젝트가 끝까지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감사는 신뢰를 만들고 신뢰는 지속하는 힘을 만들어냅니다.
네 번째 리더는 회사의 CEO입니다. 물론 제가 그 리더십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닙니다. 저는 일반적인 사원이고, 이 분은 회사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분이 해낸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바로 감사를 전파하는 문화죠. 이건 '하이 땡스'라는 걸로 대표됩니다. 일 하면서 감사한 사람이 있으면 하이 땡스를 날려주는 기능입니다. 감사했던 일을 간단히 적고 마음을 담아서 보내면 됩니다. 하이 땡스를 받은 사람은 룰렛을 돌려서 1000원에서 50000원까지 당첨금을 월급에 더해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당 1년에 30번까지 하이 땡스를 날릴 수 있게 되어 있었죠.
일하다 보면 구성원들끼리 서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걸 쉽게 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시스템적으로 구현을 해준 것이죠.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효과는 엄청납니다. 하이 땡스 한 번이라도 주고받은 사람 사이에서는 그래도 보다 깊은 유대감이 생겨납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고마워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일지라도, 하이 땡스 하나 날려주면서 요청하면 보다 편하게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죠. 그러다 보니 일하는 데도 시너지가 발생하게 됩니다. 구성원들끼리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끼게 하고, 감사의 힘을 체감하게 만드는 힘이 하이 땡스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하이 땡스가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입장에서는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죠. 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돈이 들어갔을 것이고, 구성원들에게 1000원~50000원 정도 급여로 지급해야 하는 것도 큰돈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분명히 이런 걸 왜 하냐는 재무팀의 차가운 반응도 이겨냈어야 했을 것입니다. 돈도 안 되는 일을 굳이 왜 해야 하냐는 시각인 거죠. 제가 직접 CEO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이건 분명히 그분의 마음속에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해야만 회사가 하나 되어 나아갈 수 있다는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보여주셨던 언행이 시스템으로 구현되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이 땡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 이 회사 어디구나라고 생각난 분들 계실 겁니다. 바로 SK 하이닉스입니다. 만년 반도체 메모리 2위라는 말을 듣던 회사죠. 하지만 2020년대 초 엄청난 기술적 혁신으로 메모리 기술력 1등 회사로 올라선 바 있죠. 주가는 10만 원 초에서 제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70만 원대 중반으로 튀어 올랐죠. 사람마다 견해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산업 사이클, 주변 환경, 기술적 역량 등등 다양한 요소가 이 회사의 성장에 작용했겠지요. 하지만, 제가 경험하고 느낀 SK 하이닉스의 성장에는 감사하는 문화를 만들고 서로 간의 신뢰를 다졌다는 것이 성장의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지금은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사의 문화를 지금 있는 곳에 이식하는 것이 스스로 가진 미션임을 매 순간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감사 문화는 성과를 치장하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신뢰의 기반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일도 잘 되어가면서, 인간적으로도 행복해지는 길은 분명히 감사에 있죠. 분명히 감사는 조직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가 형식이 되는 순간, 그 힘은 사라지고 오히려 관계에 균열을 냅니다. 감사는 의지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환경과 압박 앞에서 너무 쉽게 형식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중요한 건 “감사를 말하자”를 넘어서서, “감사가 무너지지 않게 지키자”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감사가 무너지는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서 감사가 지속되기 위한 조건을 찾아보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