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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un 13. 2023

바캉스는 도시를 싹 비워줍니다. 진공청소기처럼요.

알고리즘영단어:vacation, vanity, vacuum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 K. 롤링이 성인을 대상으로 쓴 첫 번째 소설은 <캐쥬얼 베이컨시 The Casual Vacancy>이다. “캐쥬얼 베이컨시”라는 말은 공직자의 자리가 갑자기 공석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제목에 사용된 캐쥬얼casual은 흔히 복장이나 행사가 격식없이 이루어질 때의 캐쥬얼casual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오히려 예상밖의, 뜻밖의 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vacancy는 자리의 공석, 공간의 비어있음을 뜻한다. vacate는 공간을 비운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명사형태로 사용되면 자리를 비우는 것, 자리를 떠나는 것이 된다. 학교를 텅 비게 하는 것, 혹은 여름철 도시를 텅 비게 하는 것은 방학vacation이다. 특히 장기간 휴가를 사용하는 문화가 발달한 유럽은 특정 기간에 도시가 전체적으로 한산해 진다. 


흔히 사용하는 말이 되어버린 베이케이션vacation은 휴가, 혹은 방학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유독 휴가를 의미할 때 한국에서는 프랑스어인 바캉스vacance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갈리긴 했지만, 둘 모두 동일한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원에 해당하는 vacare는 비우다는 뜻이 있다. 


비어있는, 비운다는 뜻의 va-는 다양한 단어에 나타난다. evacuate는 비상시에 특정 지역에 있는 사람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어로는 소개령이라고 한다. 특히, 전염병이나 내전등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밖으로 피신시켜 특정 장소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va-가 그 뿌리에 해당한다. 소리는 한국어의 ㅂ처럼 들릴수 있지만, 의외로 모음처럼 실현되기도 한다. v가 독일어에서는 f처럼 발음되고, 또 ㅂ 소리는 한국어의 ㅂ 불규칙에서처럼 모음화되기도 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귀여워가 귀여버로 변형되는 것은 무작위적인 변화가 아닌 것이다. 백신이 과거 왁찐이라고 불렸던 것은 이런 자음에서 모음으로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음으로 실현되는 w-로 시작하는 몇몇 단어들도 역시 같은 어원을 갖고 있을때가 있다. 원한다는 뜻의 want에도 역시 vacate와 같은 어원이 포함된다. 원하는 것과 비우는 것이 어떻게 의미적으로 관계가 있을까? 


want는 동사로 사용될 때, 원하다, 갈망하다는 뜻이지만, 명사로 사용될때는 결여, 결핍의 의미가 있다. 결여와 결핍은 뭔가가 비어 있을때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vacate와의 연결고리는 분명해진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영어로는 wax, wane이라고 한다. wane은 매우 문어적인 표현으로 어떤 것이 시들어 가거나 사위어 갈 때를 의미한다. 보름달에서 다시 초생달로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적인 느낌의 단어라서, 달 뿐만 아니라 어떤 감정이나, 정서, 느낌, 분위기 등이 줄어들때도 wane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역시 wane에도 want처럼 vacate와 동일한 어근이 포함되어 있다. w로 실현되는 소리인데, 한국어로 쓴다면, “웨” 정도의 소리에 해당한다. 베이케이션이 웨이케이션으로 발음되는 것은 앞에서 ㅂ 소리가 모음으로 실현될 때처럼 드믈지 않고, 웨이케이션에서 원트want, 웨인 wane등으로 변형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먼지를 남아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진공청소기 vacuum cleaner가 필요하다. 진공은 vacuum이라고 한다. 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어떤 공간을 비우게 되면evacuate 그것은 진공vacuum이 될 수 밖에 없다. 


장소를 비우는 것은 뭔가가 사라지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사라지는 것은 vanish라고 한다. 구름이 사라지거나, 안개가 사라지거나, 마술사가 토끼를 없애는 것도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쉽게 사라지는 것은 덧없다vain. 그래서 삶의 덧없음을 주제로 그린 중세의 그림들은 바니타스vanitas라고 불렀다. 

바니타스 그림에는 온갖 덧없는 것들의 아이콘들이 가득하다. 맛있는 과일에서 아름다운 꽃, 비눗방울, 모래시계, 촛불과 악기들. 그리고 그런 바티타스의 그림들 곁에는 늘 해골skull이 함께 놓여져 있다. 덧없음의 궁극적인 의미는 삶의 덧없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화려하게 존재하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공허void만이 남는다. 텅빈, 공허한 이라는 뜻의 void역시 같은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니타스와 함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삶의 덧없음과 유한성을 일깨우는 가장 대표적인 중세회화의 도상이다. 아주 잠깐 동안 지속되는 것, 혹은, 하루만 살아 있는 것은 ephemeral이라고 한다. 하루살이 같은 곤충, 혹은 하루동안 피고 지는 꽃을 지칭하는 단어와 관계가 있다. 


사라지는 것이 항상 나쁜것만은 아니다. 언어와 음악은 사라져야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다른 소리와 중첩되어 남아있다면, 언어는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말소리를 분간하는게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앞에서 울린 소리가 천천히 혹은 빠르게 사라져야 다음에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도 사라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소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라지고 없어져서 공허하게 된다는 뜻과 반대로, 가득 차 있는, 충만한 상태는 plenum이라고 한다. ple-는 뭔가가 아주 많이 있다는 뜻이다. 충분하다는 뜻은 ample이라는 말로도 쓴다. plenty of ~라는 말은 뭔가가 많이 있다는 표현이다. a lot of 와 비슷하게 쓸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a bunch of, a lot of, plenty of 등은 뭔가가 많다는 뜻으로 모두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다. 


ple-라는 말은 여러 단어에서 사용된다. complete는 함께com-. 채우다pele는 뜻으로 완벽하다는 뜻이다. 뭔가가 가득 채워져 있다면 완전하지 않은가. 비슷하게 보완하다, 보충하다는 supplement는 아래에서sub- 채워주기ple- 때문에 보충해주다, 보완해주다는 의미로 쓰인다. 


plebian이라는 말은 하층민, 혹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쓰이던 시절부터 계급적인 분포는 지금과 비슷했나보다. 상류층 사람들은 적고, 평범한 사람들은 아주 많았던 것에서 기인하는 말일까. 뭔가가 넘처날 정도로 많은 것은 plethora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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