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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Aug 31. 2023

트랙터가 지나가니 추상화가 되네?

알고리즘영단어:tractor, abstract, extract

과거엔 소가 쟁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트랙터tractor로 모든 밭일을 해결한다. 커다란 바퀴와 다부진 몸체, 견고한 금속과 강렬한 붉은색, 그리고 웅장한 배기음은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와 견주어 부족할게 없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자기 이름을 딴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트랙터를 만들던 사람이었으니, 이런 비교가 생뚱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1948년 설립한 트랙터 회사의 이름은 람보르기니 트라토리Lamborghini Trattori였다. 트랙터 회사로 많은 돈을 벌었던 람보르기니는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다. 자동차에 대한 자신의 제조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새로 만든 자동차를 엔초 페라리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콧대 높았던 페라리는 람보르기니가 가져온 자동차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만들던 트랙터나 계속 만들라는 빈정거림 반의 조언을 했다고 한다. 자존심이 구겨진 람보르기니가 성남과 분노와 도전의 마음으로 심혈을 기울여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 낸다. 지금의 람보르기니 자동차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트랙터tractor는 당기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끄는것, 당기는것trek과 관계가 있다. 과거 말이나 소가 쟁기를 끌었던 것처럼 농사일에 있어서 쟁기를 당기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트랙터는 말 그대로 끌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쟁기를 끌면 이랑이 생긴다. 쟁기가 지나간 자국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남긴 자국이나 흔적은 trace라고 한다. 뭔가를 끌고 간 뒤 남은 흔적인 셈이다. 흔히 사냥에서 사냥감의 흔적을 뒤 쫓는 것은 track down이라고 한다. 여기서 track은 사냥감이 지나간 길이나 경로 흔적을 말한다. 그 경로를 따라가면 사냥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이킹 혹은 산길을 걷는 것을 트래킹trekking이라고 한다. trek의 의미에 여행하다, 이동하다는 뜻이 있고, 역시 어원상으로 볼 때 끌다, 당긴다는 뜻과 관계된다. 여행할 때, 우리는 종종 끌리는 대로 간다고 하지 않는가? 이끄는 대로 여행하는 것처럼, 여행하는 것은 역시 끄는 것과 관계가 밀접해 보인다. 

제주의 올레길처럼 세계에는 유명한 트래킹 코스가 많다. 둘레길이나 트래킹 코스를 지칭하는 영어는 trail에 해당한다. 미국에는 태평양 연안에 PCT라고 하는 유명한 트레일 코스가 있다. PCT는 Pacific Crest Trail의 약자다. 아래로 멕시코 국경에서 위로 캐나다 까지 태평양을 끼고 올라가는 코스다. 수개월에 걸치는 대장정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있다. 


미국의 작가 쉐릴 스트레이드는 혼란스러웠던 20대에 PCT를 홀로 도전한다. 중간기점마다 필요한 보급품을 우편으로 도착하도록 계획해 두고, 자신의 키보다 훌쩍 높게 솟아오른 큰 배낭을 짊어지고 수개월에 걸친 대정정을 떠난 기록은 <Wild>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널리 인기를 얻기도 했다. 나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긴 여정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걸었고 어떤 만남이 있었는지를 아주 생생하고 또 재미있게 쓴 책으로 기억난다. 


상대방을 잡아끌어당기는 힘은 매력attraction이다. 매력적이라는 말은 attractive라고 한다. 자기가 있는 쪽으로at- 당긴다는tract 의미일 것이다. 매력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끌리는 힘이다. 사랑의 감정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나를 잡아당기는, 내가 끌리는 힘이다.  


끄는것과 당기는 것은 밀고 당기는 것과 비슷하다. 밀당이라고 하는 말은 연인사이에서 관계의 균형을 잡는 의미로 사용된다. 더 넓게는 나와 상대와의 사이에서 일종의 거래나 협상과 같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종종 협약을 treat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종의 협상negotiate이나 거래bargain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은 NPT라고 한다. UN에서 사용하는 정식 명칭은 Treaty of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다. 여기서 Treaty는 조약, 협약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자동차 뒤에 끌고다니는 캠핑카가 많아졌다. 보통 트레일러trailer라고 부르는 트럭들도 있다. 역시 끌다, 당기다는 뜻을 충실하게 활용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예고편도 역시 트레일러trailer라고 하는데, 이쯤되면 왜 예고편을 트레일러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바로 관객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많이 끌어당길수록 영화의 흥행이 보장될 것이다.  


트럭만 끌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보다 긴 운송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기차는 train이다. 맨 앞의 기관차가 뒤로 줄줄이 화물이나 승객이 타고 있는 열차를 끌고간다. 역시 tract-의 끌다는 의미가 아주 충실하게 실현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트럭truck도 의미상 관계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truck은 큰 바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trokho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이후 달린다는 의미로도 파생된다. 끌거나 달리고 굴러가는 모든 의미가 tr-이라는 요소와 공통적으로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트레인train이라는 단어는 동사로도 사용된다. 물론, 어원도 동일하게 tract와 관계가 있는 말이다. 지금은 거의 한국어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트레인train은 훈련하다, 훈련시키다는 뜻이지만, 사실 트레인과 훈련이라는 말은 서로 어감이 미묘하게 다르다. 한국어처럼 흔하게 사용되면서 독립적인 미묘한 뉘앙스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훈련시키는 것과 끌어당기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의미를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다. 누군가를 훈련시키는 것은 대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 것과 같다. 체육관에서 선수를 훈련시키는 것은 일정한 목표를 향해 선수를 끌어주는 것과 동일하다. 목적이나 어떤 형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면 훈련한다는 뜻과 끌다는 의미가 아주 자연스럽게 부합한다. 트레인train이라는 동사에서 훈련사trainer, 훈련을 받는 사람 trainee등의 단어도 파생될 수 있다.  


Protract는 앞으로pro- 끌다tract 라는 의미로, 어떤 기간을 연장하거나 시간을 오래 끄는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끌어당긴다는 의미는 비슷하게 portray에도 나타난다. Portray는 미술에서 그림으로 묘사한다, 그리다는 뜻을 갖고 있다. 명사형으로 사용되면, portrait인데, 초상, 초상화라는 의미로 쓰인다. 


초상화는 다른 사람의 모습, 혹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림속의 이미지가 정교하고 세밀할 수록 그림은 마치 앞으로 튀어 나올것처럼 생생하다. 그런의미에서, 초상화를 그리다는 뜻의 portray 역시 por-앞으로 tray끌어당기는 의미로 분석할 수 있다. tray역시 tract에서 파생되었다. 그림으로 재현하는 대상을 눈앞에 끌어온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적절할거 같다.  

초상화 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에서도 tract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19세기까지 이어진 서구의 사실주의적 회화는 20세기 모더니즘을 거치면서 점점 대상의 재현보다는 화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대상이 사라지다 보니, 회화는 점점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기 어렵게 변해간다. 이른바 구상concrete에서 추상abstract으로 화폭의 이미지가 변한 것이다. 


추상적abstract이라고 할때, 그것은 대상으로부터ab- 핵심과 본질을 끌어낸다는tract 것이다. 당연히 구체성은 탈각되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남기 쉽다. 그리고 형태가 없는 개념을 표현하는 일은 개인별로 천차만별일 것이다. 


광고 포스터에도 종종 차용되는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그나마 산뜻한 색감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극단적으로 추상적인 회화는 아무래도 색면추상주의라고 불리는 작품들일 것이다. 유명한 마크 로스코의 색면화나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는 캔버스에 단조로운 색깔을 입힌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화가들의 그림이 단조로운 색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 색을 칠하기 위한 붓질의 흔적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보고 감상하는 것은 작품이 있는 현장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예술가로 손꼽히기도 했던 잭슨 폴록의 그림 역시도 대표적인 추상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캔버스를 세우지 않고 뉘여서 그 위로 물감을 흘리거나 뿌렸다. 특별한 대상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미국의 역사와 연관지어 폴록의 회화가 갖는 예술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화가들은 종종 그림을 그리다가 잠시 다른 여가를 갖기도 한다. 뭔가에 집중해 있다가 잠시 느슨한 여유를 갖는 것은 distraction이다. 집중해 있던 것으로부터 멀리dis- 끌어당기는tract 것이다. distract는 동사로 관심이 멀어지다, 주의를 분산시키다는 뜻이지만, 명사로 distraction이라고 할 때는 기분전환이라는 말로도 번역된다. 누군가가 집중하지 않고 산만하면 distracted라고 할 수도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 소개된 영화<Extraction>는 납치된 사람을 구출해내는 과정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준다. 말 그대로 누군가를 밖으로ex- 끌어내는tract 것이다.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낸다는 뜻에서, extract는 추출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특히, 식재료와 관련해서 사용되면, extract는 일종의 농축액, 추출된 정수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구출작전은 때로 실패하기도 한다. 특히 군사작전에서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후퇴retreat해야 한다. 후퇴retreat는 뒤로 밀리는 것이다. 마치 뒤에서re- 누가 당기는treat 것처럼 더 이상 전진하기 어렵다. 전쟁과 같은 맥락에서는 후퇴이지만, 종교적인 의미로는 잠시 활동을 중지하고 은거하거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면 휴식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다. retreat이라는 단어가 삶과 전쟁이라는 상황 모두에서 은유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그 만큼 삶과 전쟁이 서로에게 비슷한 것이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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