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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Sep 17. 2023

지중해에 빛나는 중용의 덕

에메랄드 빛 바다, 지중해는 보석처럼 빛난다. 지중해는 대서양에서 이어지는 바다이고, 바다 대부분이 유럽,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지리학적 특징은 곧장 이름이 되었다. 지중해 地中海Mediterranean Sea는 말 그대로 땅 가운데의 바다를 의미한다. Medi-는 가운데, 중간을 의미한다. terra-는 땅을 의미하는 단어로 파생된다. 흔히 영역이라고 하면 territory라고 하는데, 역시 terra-에서 파생되었다. 미술시간에 테라코타terracotta라는 것을 배운기억이 있다. 여기서terra는 진흙clay를 말하는데, 테라코타는 구운 흙을 의미한다. 보통은 흙을 구워서 만들어진 그릇류를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영어단어 중에 “가운데”, “중간”의 의미와 연관된 것은 대부분 지중해의 어원과 관계가 있다. 두 그룹이 있을 때 중간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중재적 역할을 하는 것은 mediate라고 한다. 명사로 mediation 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중재”의 의미가 있다. 갈등이나 협상을 중간에서 이어주는 일이다. 

신문, 잡지, 라디오와 티비 그리고 지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명으로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미디어를 통해서 얻게 되었다. 미디어media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람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미디어라는 말은 커뮤니케이션의 장치이고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소통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중간연결의 수단이라는 명사적인 의미였기 때문에, 이 단어는 단수형과 복수형이 있다. 미디어는 복수형이고, 단수형은 medium이다. 근사한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을 때, 미디엄medium으로 구워달라고 할 때의 그 미디엄이기도 하다. 중간정도라는 의미다. 위치에서의 중간이라는 의미가 정도에서의 중간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 것이다. 


미디어의 단수와 복수 형태변화는 데이터data에도 적용된다. 데이터는 문법적으로 복수의 형태이고, 단수는datum으로 쓴다. 달랑 하나 있는 것을 데이터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데이터는 항상 어느 정도의 양을 구축하고 다뤄진다. 그래서 항상 복수형인 데이터data로만 쓰이다 보니, 아예 단수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재미있는 것은 거대한 체육관을 의미하는 스타디움stadium역시 문법적으로는 이런 단수, 복수형태와 동일한 변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규모 때문에 복수형태의 스타디움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 만으로도 거대한 종합경기장이 여러 개 모여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스타디움의 복수형태인 stadia는 좀처럼 사용될 일이 없다. 스타디움stadium은 어원적으로 달리기 경주나 고대의 거리를 측정하는 단위를 의미한다.  


어릴 때는 공부를 잘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었다. 어른들의 흔한 가벼운 관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잘한다고 말하기는 쑥스럽고,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어서, 대부분은 그냥 “보통이요”라고 대답했었다.  


미디어커Mediocre는 정도나 실력이 중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간이라면 그저 보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디어커mediocre는 원래 산의 중간쯤 올라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뒤에 있는 –ocre에는 삐죽삐죽한 산봉우리라는 의미가 있다.  


학문이나 실력에서 중간정도의 등급은 보통 intermediat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상급과 초급의 중간, 그 사이에 있다는 의미에서, 사이를 의미하는 inter가 결합되었다. intermediate은 사실 꽤 괜찮은 정도의 실력인데, 의미로는 중간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종종 upper intermediate라는 애매한 표현도 종종 사용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했던 중용mean의 덕이라는 개념이 전해진 후로, 중간을 의미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덕은 유교의 전통에서 말하는 중용中庸과 자주 혼동되었다. 사실 어느정도 통하는 의미가 있긴 하지만, 엄밀하게는 동서양의 사상적 전통과 철학이 달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mean을 유교적 중용中庸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소 매우 단순한 병치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mean은 어떤 성질의 양 극단 사이의 중간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용기courage는 중간의 덕virtue이라고 할 수 있다. 용기가 지나치면 무모함recklessness이 되고, 부족하면 비겁함cowardice이 되는 것이다. 반면 유교의 중용中庸은 인간의 본성이 발현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중간이라는 의미는 수단means이라는 의미로도 연결된다. 수단means는 의지와 목적 사이에서 그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목적 사이에 위치해 있는 중간이라는 의미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하루의 중간은 정오다. 보통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은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highnoon이라고 하는데,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하이눈High Noon>은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1952년작 서부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게리 쿠퍼가 보안관 역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오전에서 정오까지 시간이 흘러가는 긴박함을 영화의 실제 러닝타임과 동일하게 흘러가게 함으로써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이는 효과를 만들기도 했었다. 

정오에 걸려있는 태양의 위치는 자오선子午線meridian을 결정한다. 정오에 관측자의 머리 바로 위에 태양이 위치할 때, 천정zenith을 가로질러 남극과 북극을 잇는 선을 자오선이라고 한다. meridian은 meridies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가운데를 의미하는 medi-와 날을 의미하는 –dies로 나눌 수 있다. dies는 원래 “밝게 빛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파생된 day는 당연히 날이 환하게 빛나는 낮을 의미하고, 동시에 하루를 의미하게 된다. 낮에 활동한다는 주광성을 의미하는 diurnal역시 환한 낮을 의미하는 dies의 파생된 형태를 갖고 있다. 

자오선이라는 말은 동양의 12지지地支를 방향으로 배속했을 때, 북쪽이 자子방향, 남쪽이 오午방향을 이루는 것에서 유래한다. 오전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a.m.(ante meridian)은 자오선상에서 태양의 위치가 천정zenith 앞ante이라는 뜻이고, 오후를 의미하는 p.m.(post meridian)은 천정 뒤post를 의미한다. 


가운데를 의미하는 med-는 다양한 단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친김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medicine도 관계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medicine의 med는 전혀 다른 어원을 갖고 있다. 여기서 med-는 다루다, 처리한다,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medicine은 질병을 다루고 치료한다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명상한다는 뜻의 meditation도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지금이야 내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명상을 하지만, 기원으로 살펴본다면, 명상은 어떤 문제해결을 위해 심사숙고 했던 것으로 시작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처방이라는 뜻에서 remedy에도 역시 medicine과 같은 어원이 포함되어 있다. 흔히 요법이라는 말로도 많이 사용된다. 앞의 re-는 “다시”라는 뜻의 접두사다. 뭔가를 다시 치료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어원상으로는 단순히 육체의 질병뿐 아니라 사악한 것, 죄로부터의 치료를 의미하기도 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의미에서, med-는 공손하고 겸손함을 의미하는 modest에도 포함된다. 아마도 사회생활에서 겸손한 태도는 매우 적절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것의 정도가 지나치지 않고 적절할 때에도 moderate라고 하는데, 역시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고르곤자매the three Gorgons 중 머리카락이 뱀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메두사Medusa에도 이 어원은 관계되어 있다. 원래 그리스어 메두사Medusa는 보호자guardian을 의미하는 medien에서 파생된 말이다. medien은 보호하다, 지배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med-것은 필요했을 것이다. 메두사는 보는 사람을 모두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아테네여신으로부터 받은 방패를 거울로 이용해 직접 메두사를 보지 않으면서 싸워 승리한다. 이 방패는 종종 이지스aegis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군사분야에서 구축함을 지칭하는 이름으로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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