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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an 19. 2024

카사블랑카엔 카지노가 없다


카지노casino 는 이탈리아어지만, 이젠 영어권은 물론 한국에서도 그냥 카지노라는 말로 쓰인다. 미국의 라스베가스나 한국의 강원랜드는 다른 많은 볼것과 경험할 것들이 있지만 카지노로 제일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카지노라는 말은 원래 이탈리아어로는 작은 집을 의미한다. 라틴어 casa-는 오두막이나 헛간을 의미하는데, 어쨌거나 기둥이 있고, 지붕이 있으니 집이라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카지노와 어원적으로 관계있는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한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했던 1942년작 흑백영화다. 영화의 제목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도시 이름이다. 동시에 하얀blanca 집casa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서양에 위치한 하얀집. 낭만적이다.


블랑카blanca라는 말은 흔히 빈칸을 말하는 블랭크blank와 어원이 같다. 아무것도 없는 것, 아무색도 칠해지지 않은 것, 그래서 하얀색으로도 연결되는 것이다. 또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은 온통 하얗거나, 온통 까맣거나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어있다는 뜻의 blank, 하얀색을 연상시키는 blanca는 검은색을 의미하는 black과도 관계가 있다. 공통적인 부분은 bl-이다. bl-은 폭넓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하얗게 빛나거나, 타거나, 태운다는 뜻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하얀색과 검은색이 공통의 어원을 갖고 있을까? 불이 너무 활활타오르면 너무 밝아서 하얗게 보일 것이다. 태양이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하얀 공간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것처럼 보인다. 밝은 빛은 뜨겁다. 그래서 그 빛은 사물을 태우기도 한다. 다 타고 나면 재는 까맣게 남는다. 그래서 검은색이 연상된다. 


그래서, 하얀색을 의미하는 블랑쉬Blanche는 여성의 이름으로, 검은색을 연상시키는 Blake는 남자(최근에는 여성의 이름으로도, 블레이크 라이블리Blake Lively처럼)의 이름으로 사용된다. Blake는 피부가 살짝 까무잡잡한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이름이 블레이크라면 외모를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얗게 만든다는 뜻에서, 표백한다는 뜻의 bleach도 관계가 있다. 역시 bl-을 공유한다. 누군가의 시야를 하얗게 만든다는 것은 앞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님은 blind가 된다. 빛으로부터 빛나는 것에서 타는 것으로, 정 반대되는 의미가 공통의 어원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단어를 살펴보다 보면, 정 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어원은 하나에서 유래하는 단어들이 종종 보인다. 같은 부모에서 태어났어도 정 반대의 길을 가는 자식들이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은 블랑쉬 드보아Blanche DuBois 였다. 어느 중국 고전에, 묵자는 사람은 하얗게 널린 천을 보고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얀 천은 결국 언젠가는 다른 색으로 염색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블랑쉬라는 이름에는 운명에 대한 암시가 있었던 셈이다. 담요를 의미하는 블랭킷blanket 역시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다. 본래 blanket은 하얀천을 의미한다. 지금은 알록달록한 형형색색의 모든 담요가 blanket이지만. 


영화 <카사블랑카>는 책으로 읽었던 것 만큼 파격적인 낭만이나 스펙터클은 없었다. 워낙 고전영화라 기대치가 높았던 탓이다.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영화의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영화는 1942년에 나왔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 카사블랑카라는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도 번안되어서 가수 최헌이 한국어로 부르기도 했다. 버티 히긴스의 원곡은 1982년에발표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번안곡은 1983년에 나온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에서 워낙 유행했던 노래이다 보니, 영화 <카사블랑카>를 직접 보기 전까지, 별 생각없이 영화의 주제가가 히긴스의 노래 카사블랑카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철들고나서 직접 흑백 영화를 보는데, 기대했던 노래가 등장하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곡은 전혀 다르지만, 또 다른 아주 유명한 노래였다. 영화의 주제곡은 As time goes by 라는 노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7vThuwa5RZU


히긴스의 카사블랑카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아니지만, 묘한 감동을 주는 노랫말을 갖고 있다. 히긴스의 노래는 바로 이 카사블랑카 영화를 함께 보다 사랑에 빠진 연인에 관한 이야기를 가사로 하고 하고 있다. 노래에는 젊고 가난한 연인들이 등장한다. 낡은 쉐보레를 타고 들어간 자동차 극장. 투박하게 깜빡이는 불빛 속에서 흑백으로 명멸하는 카사블랑카를 본다. 가난했지만 우아한 낭만. 반짝이는 별빛 아래 팝콘과 콜라는 캐비어와 샴페인이 된다. 여인의 눈동자에 비치는 모로코의 달빛. 더운 여름 삐걱이며 힘들게 돌아가는 선풍기의 날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당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남자의 고백은 영화속 험프리 보가트의 상심과 중첩되며, 절묘하게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곡 "시간이 흐를수록As Time Goes By"로 표현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rmyQNI9s_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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