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세례 덕분에 초자아라던가, 에고라던가, 리비도와 같은 말들이 세련된 지식이 되어 유행처럼 차고 넘치던 때가 있었다. 한때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는 것처럼, 리비도라는 말은 이제 먼지쌓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따위를 펼칠때나 만나는 단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리비도는 얼마나 열정적인 말인가.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가 리비도에 부여했던 숭고한 의미도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문명은 포기된 리비도가 승화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지형도에서 이드는 보통 자아의 저~~아래에 위치한 원초적인 욕망으로 이해한다. 리비도는 이드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다. 생존에 대한 욕망이나 성적인 욕망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인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성욕이라는 단어가 정신분석학이라는 필터를 지나면 리비도가 된다. 리비도는 그만큼 들끓는 단어다.
사랑.
Love는 리비도libido와 어원적으로 관계가 있는 말이다. love에는 leubh-라는 인도유럽어에서 유래한 어원이 있다. 돌봐주고, 욕망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한국어 소리로 ‘럽’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리비도libido 역시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가정이긴 하지만, ‘럽’이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원한다는 설도 있다. 산스크리트어 루바야티lubhyati, 루바야lubhaya 등의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핵심이 되는 부분의 소리가 유사하다. 루바야티는 욕망한다는 뜻이고, 루바야는 미치게 만든다는 뜻이다. 사랑의 증세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말이다.
라틴어로는 lubet, libet로 진화해서 libido로 연결된다. 고등학교때 ‘악마’라는 별명을 가졌던 독일어 선생님이 있었던 덕에 독일어로 사랑이 liebe라는 것 정도는 아직 기억한다. 독일어로 사랑을 의미하는 리이베liebe는 러브love와 비슷하면서 리비도libido의 핵심자음이 겹쳐져 있다. 당연히 관계가 있다.
독일어 선생이 없었다 하더라도, 신승훈의 노래 <보이지 않는 사랑>을 기억한다면 문제 없다. 노래는 샘플링 된 베토벤의 Ich liebe dich로 시작한다.
사랑을 말하면 에로스와 아가페를 떠올릴 것이다. 아가페는 기독교적인 사랑, 박애와 같이 성sex를 초월한 숭고한 사랑을 의미한다. 반대되는 자라에는 에로스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에로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의인화된 사랑의 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로마신화의 큐피드에 해당한다. 에로스는 아가페와는 달리 완전히 육체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에로스eros와 큐피드cupid 각각 그리스어와 라틴어 eran과 cupere를 어원으로 한다. 두 단어모두 욕망한다desire는 의미를 기본으로 한다.
에라스무스라는 이름은 eros의 의미에서 파생되어 사랑받는 사람 즐겁고 유쾌하다는 의미가 있다.
신화를 배경으로 한 여러 그림속에서 에로스는 활을 매고 다니는 꼬마 천사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꼬마가 쏘는 화살은 대부분 치명적이다. 화살에 맞으면 신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미치게 사랑하게 되고, 또 극도로 싫어하게 된다. 게다가 에로스는 눈을 가리고 있다. 누가 사랑의 화살을 맞을지 아무도 모른다. 또, 사랑은 어이없이 맹목적일수 있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Love is blind.
사랑하는 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원적으로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믿는다는 뜻의 believe에도 러브와 리비도와 같은 어원 ‘럽leubh’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소리낸다면, 빌리브에서, ‘리브-lieve’에 남아있다.
쟝 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베드신이 있었다. 영어제목은 <The Lover>로 되어 있지만,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쓴 원작 소설의 프랑스어 제목은 <라망L’amant>이다. 애인, 연인,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어에도 비슷한 단어가 있다. leman이다. le와 man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의 le는 소중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Le-는 love의 ‘럽’과 어원이 같다. 여기서 man은 남자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leman은 사랑하는 사람, 연인이라는 뜻이다.
1980년대 대우자동차에서 생산했던 소형 자동차의 이름이 생각난다. 르망. LeMans이라고 쓴다. 자동차의 이름은 프랑스의 작은 공업도시 르망LeMan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인이라는 뜻과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한국사람이 듣기엔 소리도 비슷하고, 나름대로 자동차를 연인처럼 아낀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연인이라는 풀이도 심심하지는 않을거 같다.
사랑은, 때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마음의 사치" 가 된다
https://youtube.com/watch?v=K9UyHwHMWk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