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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un 26. 2024

보통이라는 특별한 말

보통.


“공부 잘 하니?”

흔한 어른들의 질문에 늘 “보통이요”라고 대답했었다. 

겸손의 표현은 아니었다. 


보통. 

늘 사용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쉬운 말이지만, 보통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심오한 뜻이 있다. 한자로 보면 널리, 두루(보普) 통(通)한다는 뜻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원리나 원칙이 그런것처럼, 보통이라는 말은 물리학의 법칙이나 천체운동의 법칙이 두루두루 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 수학자들의 난제는 두루 통하는 원리와 원칙을 구하는데 있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특별한 것은 두 이론 모두 인간이 경험하는 물리적인 현상에 두루 통할 수 있는 원리를 밝혀낸 이론이기 때문이다. 단어의 뜻을 그대로 살려서 표현한다면, 그 이론들은 인간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학의 보통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위대한 물리학 이론의 발견은 언제, 어디서든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항상적인 보통普通의 원리나 원칙을 구하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보통이라는 말은 그저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숭고한 지위가 어쩌다 이런 범상한 지위로 이동하게 된 것일까? 


보통이라는 말이 숭고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단순하게는 곱배기가 아닌 보통이라는 메뉴의 표현에서부터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원리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숭고함과 범상함이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둘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에 보통이라는 말은 더욱 더 정확한 의미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이라는 말을 의미하는 영어단어는 다양한다. common, average, mediocre, mean.

common을 빼면 average나 mediocre, mean은 대부분 중간이라는 의미에서 보통의 번역어라고 할 수 있다. 


common은 일반적인, 그리고 모두에게 속한다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두루 통한다는 의미와 통한다. 좀더 분석해보면, common은 함께 라는 뜻의 com-과 변한다, 가다라는 뜻의 –mon(어원의 형태로는mei, mi-) 가 결합된 단어다. 이렇게 보면 common의 어원적 의미는 함께 간다는 뜻이다. 통상 이해하고 있는 common의 의미와 비슷하다.


mediocre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중간정도의 의미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가운데를 의미하는 medi- 와 ocre-의 결합으로 구성된 단어다. ocre-는 뾰족한, 날카로운, 툭 솟아난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스펠링으로acu-로 나타나는데, 침술을 의미하는 acupunction이나, 날카롭고 정확하다는 뜻의 acute에도 보인다. acute는 질병에 대해서 사용될 때, 만성적chronic이라는 표현에 대응되는 급성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뭔가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대개 날카롭기 때문이다. 


모짜르트의 천재성과 살리에리의 재능을 대조해서 보여주었던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잊을 수 없는 평범함에 대한 대사가 있다. 극중 살리에리는 모짜르트의 천재성에 대비해서 자신을 이렇게 말한다. 


"난 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하고 있어. 난 평범한 사람들의 챔피언이야. 난 그 평범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이지" 

"I speak for all mediocrities in the world. I am their champion. I am their patron saint."


그래서인지, 심지어 살리에리 증후군Salieri syndrome이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천재같은 인물이 주변에 있어서  언제나 2인자일수 밖에 없을때, 열등감과 시기를 보이는 심리적 증상이라고 한다.  


날카롭고, 갑자기 솟아난 것, 관통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acu-는 식초 같이 산성을 띤 것을 표현할때도 사용한다. 그래서 산성酸性이라는 의미로 acid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ac-의 소리는 산소酸素를 의미하는 oxygen에도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산소酸素라는 영어단어의 oxy-는 산성을 의미하는 acid의 ac-부분과 같은 어원인 것이다. 그래서 산소酸素의 한자어나 산성酸性의 한자어를 보면 산酸에 해당하는 한자가 동일하다. 식초 따위를 의미하는 초 산酸이다. 날카롭고, 찌르는 듯한 이라는 의미의 ac-가 같은 어원이기 때문에 같은 한자를 이용해서 번역한 것이다.

여름날 아카시아 꽃이 활짝 핀 숲길엔 향기가 가득하다. 달콤한 향기와는 달리, 아카시아 나무는 가시도 많다. acacia라는 말에도 날카롭다는 뜻의 어원 acu-가 들어있다. 그리스어로 akakia라고 했는데, 가시가 많은thorny 이집트나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mediocre, mean, average모두 중간, 평균, 보통이라는 뜻인데, 중간이라는 뜻이 어떻게 포괄적인 원리나 원칙이 통용된다는 표현으로까지 확장되었을까? 


동양적인 관점에서 중간, 곧 중용中庸은 두루 통하는 덕이었기 때문에 그런 어법상의 용례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보통은 중간, 중간은 중용, 중용은 곧 두루 통할 수 있는 미덕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뜬금없지만, 세상살이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한두 번쯤은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중간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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