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영화에는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스펙터클Spectacle이다. 볼거리, 볼만한 광경등을 의미하는 스펙터클은 현대에 더욱 더 의미있는 용어가 되었다. 복수형spectacles으로 쓰면 안경eyeglasses를 의미한다. 헐리우드 영화의 제작 기술이 발달해서 정말 볼거리가 많아진 것도 있지만, 사회현상으로서 스펙터클은 매우 사회학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60년대 프랑스의 사상가 기 드보르Guy Debord는 스펙터클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했다. 자본주의는 상품의 화려한 외피와 외양을 과장해 삶의 진정한 가치와 본질을 감춘다는 것이다. 상품은 우리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스펙터클이다. 과거 영화관에서 경험하는 영상의 스펙터클은 이제 티비와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왔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펙타클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펙터클spectacle이라는 말은 spect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spect는 본다, 보는것과 관계된 다. 극장의 관객은 spectator이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는 뜻의 inspect는 안으로 in 뭔가를 본다spect는 뜻이다. Inspect는 숙어로 표현하면 그대로 look into가 된다. ‘조사하다’는 뜻이다.
영국에는 The Spectator라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잡지가 있다. 뭔가를 본다는 행위가 관련된 이름으로 잡지명을 만드는 것은 특이하다. 영국에는 The Observer라는 신문도 있다.
특별한special것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본다는 뜻의 한자는 별瞥 이다. 특별하다에서 특별特別은 구분한다는 뜻의 별別을 쓴다. 아쉽다.
specter는 유령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령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기 때문일까.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2015년 007 씨리즈의 제목은 Spectre였다. 007원작자 이언 플레밍Ian Fleming 이 영국출신이라서 그런지 영화포스터에는 영국식 스펠링 Spectre로 쓰였다.
유령을 지칭하는 비슷한 말은 ghost, apparition, 그리고 spooks 도 있다.
미국의 현대 소설가 필립 로스Philop Roth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휴먼스테인 The Human Stain>에는 spooks의 희한한 뜻이 소개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안소니 홉킨스는 대학의 영문과 교수다. 어느 날 출석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수업에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학생을 두고, spooks 라고 부른다. 한 번도 보이지 않았으니 유령같다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전해 들었던 학생은 교수의 발언을 인종차별적이라고 고발한다. 공교롭게도 해당 학생은 흑인이었는데, spooks라는 말은 흑인을 조롱하는 말racial epithet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어이없는 반응이었지만 학교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결국 정년을 몇 년 남겨두고 그는 사임하고 만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 역시 하얀피부의 흑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혼혈가계에서 부모는 흑인이어도 자식에서 하얀 피부색의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인종적으로는 흑인이지만 겉모습은 백인처럼 보인다. 그런 경우 굳이 자신을 흑인이라고 밝히지 않고 백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passing 한다고 한다. 의외의 생물학적 현상이지만, 미국에서는 <패싱Passing> 이라는 소설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는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넬라 라슨 Nella Larsen에 의해 쓰여진 이 소설은 이미 1929년에 출간되었다. 2021년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10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백색에 대한 판타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흔히 존경하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 respect에도 역시 spect가 보인다. 누군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다시한번 되돌아re 보게spect 되기 때문일까? 과거를 되돌아 보는 것 역시 비슷하다. 과거retro를 보는 것spect, 뒤돌아 본다는 것은 retrospect이다. retro-에는 뒤를 향한다는 뜻이 있다. 레트로라는 단어는 복고를 의미하는 수식어로 점점 많이 사용된다.
엊그제 레트로retro 라디오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