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영단어: Romance, Roman, Novel
내로남불과 같은 기괴한 방식의 조어가 일상적인 현상이 되어간다. 안타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어는 살아 있는 것이고, 변화하며, 또 진화한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언어를 가감하고 유도하며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언어는 인위적으로 통제하려고 할 때 언어적인 차원을 뛰어넘는 부작용을 만들기도 한다.
내로남불과 같은 현대식 사자성어에서 사용된 로맨스Romance는 불륜과 대비되는 순수한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하기 위해 쓰였을 것이다. 로맨스 혹은 로맨틱이라는 말은 열정적passionate이고 글래머러스glamorous한 남녀관계를 연상시킨다. 사랑은 가식이 없다. 그래서 때로 열정적인 사랑은 세련된 것과 거리가 멀 때가 많다.
로망스romance에는 본래 천박vulgar하거나, 상스럽다는secular 의미도 있었다. 도덕과 윤리로 무장한 사람들에겐, 뜨거운 사랑은 천박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스럽다는 의미와는 별도로, 로맨스라는 말은 본래, 이야기story 혹은 서사narrative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로만Roman이라는 말은 흔히 말하는 남자들의 "로망" , 여성들의 "로망"이라고 할 때 사용되는 로망과는 관계가 없다. 쉽게 유추 할 수 있듯이, 로만Roman은 고대 로마와 관계가 있는 말이다. 로마에서 사용되던 라틴어의 영향을 받은 여러 언어를 로만어Roman language라고 부른다.
이후, 언어를 지칭하는 의미는 문학적인 의미로까지 확장되어 로맨스romance는 이야기, 소설, 서사를 의미하게 된다. 17세기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주로 모험과 환상, 그리고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 로맨스라는 말은 쟝르를 의미하는 말에서 사랑과 같은 판타지 이야기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게 된다.
독일 교양소설을 흔히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이라고 한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 빌둥스로만 Bildungsroman은 그림bildung 과 이야기roman라는 의미로 구성된 말이다.
영미문학의 전통에서 로망스는 중세를 거쳐서 19세기까지도 이어져온다. 사실주의적인 소설에 대비되어, 로망스는 환상과 기이함과 신기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소설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이미 전공자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고전이자 대표적인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제인 에어> 여러 면에서, 당시의 전형적인 여성과는 다른 독립적이며, 자신의 주장이 분명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한편의 대표적인 로맨스, 나타니엘 호손의 <주홍글씨> 역시 헤스터 프린이라는 또 다른 여성 주인공을 그리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의 시기가 서로 비슷하다. <제인 에어>는 1847년, <주홍글씨>는 1850년에 각각 출판되었다. 어쩌면 로맨스라는 장르를 통해, 단순히 환상과 판타지 뿐만 아니라, 여성의 새로운 모습을 그리는 것도 함께 시도된 것일지 모르겠다. 혹은 그런 여성의 모습이 판타지라고 여겨질 만큼, 당시 여성의 사회적 처지는 열악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20세기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라는 의미의 누보로망 Nouveau Roman 이라는 새로운 경향이 등장했다. 기존의 전통적인 서사와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소설의 형식을 추구하려고 한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알랭 로브그리예Alain Robbe-Grillet는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누보로망의 작가들은 기존의 선형적인linear 스토리와 플롯을 벗어나, 개인의 감각과 기억, 그리고 주관적인 경험에 촛점을 맞추게 된다. 실험적인experimental 기교와 애매모호함, 불확실성등을 통해 작품을 읽기는 훨씬 더 어려워졌지만, 이후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 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옛것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 새로운 문학의 형식과 장르를 시험했다고 하지만, 과거의 문학에도 충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은 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것은 옛것이 되고, 도전과 모험은 루틴이 된다. 실험정신은 클리셰가 되고 전복과 전위는 또 다른 전통이 되는 것이다.
전위avant-garde는 시대가 지나면 새로운 전통convention이 된다. 하지만 애초에 장구한 문학의 세계에 정말 새로운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새로운 것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어느 정도의 소비가 끝나고 나면 다시 흐지부지 해지는 것이 예술의 흐름이 아닌가 싶다.
20세기의 가장 널리 알려진 전위는 아마도 마르셀 뒤샹의 1917년 작, <샘Fountain>일 것이다. 동네 철물점에서 남성 소변기를 사다가 자기 이름도 아닌 엉뚱한 이름으로 서명을 한 뒤 예술작품이라고 출품을 했더니, 역사에 길이 남는 이정표가 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이런 전위의 시도는 종종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이런 전위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예술의 극심한 인플레가 아닐까 싶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이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전시회가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여러 작품이 있지만, 그 중 <코미디언>이름의 작품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작품(?)이라곤, 전시회장 벽에 덕테이프로 바나나 하나를 붙여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심지어 팔리기까지 했다. 뭘 팔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기사에는 그게 1억 2천만원(혹은 1억 4천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작가가 처음 작품의 의미로 그걸 벽에 붙일 때, 바나나는 30센트였다고 한다. 이번 한국전시중에 그걸 또 누군가가 집어먹은 것이 가십거리가 되었다. 설치된 바나나를 집어먹는 해프닝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차라리 원숭이를 데려가서 먹게 했다면 좀 더 재미있는 스캔들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현대미술과 바나나는 이전에도 화제가 된적이 있었다. 1967년, 앤디 워홀은 음악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레코드 앨범 표지를 위해서 바나나를 그린적이 있었다. 밴드의 음악과는 별개로, 워홀의 바나나 디자인은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특히, 앨범 자켓의 바나나 이미지는 껍질 부분이 스티커로 되어 있어서, 앨범 구매자는 스티커를 벗겨낼 수도 있었다고 한다.
카텔란은 현재 가장 돈을 잘 버는 예술가중 한 사람이 되었다. 어느 기사에 따르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는 어떻게 하면 가장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직업이 예술가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