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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장 Apr 12. 2024

쓸모없는 것의 쓸모

건축 설계에서 스터디라 부르는 것

어느 분야든 습작이 있다.


아이폰만 해도 1부터 시작해 지금은 15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 시점에서 과거의 것들은 모두 습작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완제품을 위한 수많은 습작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추측할 만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공모라고 부르는 분야로 넘어오면 습작의 범위가 넓어진다.


1등이 아니면 대부분 빛을 보지 못하는, 의도치 않은 습작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보통 습작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단계여야 하는데, 공모 과정에서 2등부터 꼴등까지는 모두 버릴 수밖에 없는 대안이 되어 버린다. 한 노랫말처럼 'Winner takes it all'이 분명한 사실로 다가온다.



나는 주로 설계공모를 하고 있고 대부분의 경우 당선이 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버려지는, 잘해야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정도로 아카이빙이 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는데, 가끔 너무나 아까운 경우가 있어 이것의 쓸모를 찾아주고 싶을 때가 있다. 최근의 공모에서 2등을 한 내 계획안이 딱 그렇다.



물론 그 계획안은 나의 생각에 내재되어 다른 계획안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으로만, 홈페이지나 SNS의 한 켠을 차지하기에는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계획안이 도출되는 과정이 아이를 낳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출산'에 비유하기도 하는데,(실제 출산을 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비유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꽤나 고통스러운 생각의 굴레 속에서 나오다 보니 더 목적을 찾아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저 녀석을 어떻게든 더 쓸모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 아이가 건강히 자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 할 일을 하길 원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저 계획안도 사회 안에서 제 할 일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것이 가능하냐 마냐는 순전히 내게 달렸다.



강원 특수교육원(원주) 설계공모 2등 수상작_선아키텍처 건축사사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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