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해외출장을 간다는 남편

남편 덕에 폭탄 맞은 맞벌이 아내

by 소소황

경력단절을 극복한 아내는 육아에 전념하며 쌓인 일에 대한 욕구를 분출하다시피 업무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에 대한 결과로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보다 중요한 업무에 투입되기 시작했고, 남편은 그 모습이 자신의 일인 양 뿌듯해했다.


아기를 재운 어느 날 밤 아내는 미안한 눈초리로 CES 2022(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박람회)에 가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해외출장이 내심 부러웠지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대신 걱정 말고 다녀오라 했다. 두 돌이 갓 지난 아기는 유치원도 잘 다니고, 아기의 조부모도 물심양면 도와줄 것을 알기에 큰 걱정이 없었다. 그러기에 쿨한 남편으로, 아내의 워킹라이프를 적극 지원하는 남편으로 기억되고자 했다. 그렇게 남편은 걱정 말고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축하를 건넸다.


사실 남편도 CES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자신감 부족, 그리고 이직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자의 미숙함이 걱정되어 선뜻 지원하지 못했었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회사에서 먼저 찾아주는 아내가 부럽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래서 더욱 부러운 마음을 감춘 채 쿨한 남편의 모습을 유지했다.


오미크론이 등장하고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위드코로나가 위협받자, 아내의 출장 계획은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남편 팀의 출장 계획도 재검토를 하게 되었고, 오히려 남편이 라스베가스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다. 한바탕 아쉬움이 쓸고 갔기 때문일까, 남편은 이번 기회를 잡고 싶었다. 이제부터는 선택의 문제였다.


남편은 서둘러 아내에게 상황을 전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기를 맡기게 되더라도 일단 우리는 출장을 가겠다고 하는 게 어때? 물론, 코로나 때문에 막판에 둘 다 못 갈 수도 있겠지만.."


아내는 남편보다 더 쿨한 사람이었다. 쿨하게 보이기보다는 정말로 쿨한 사람. 소식을 접한 아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갈 수 있으면 무조건 가라고 했다. 오히려 자신은 아기도 걱정되니 간다 하더라도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불확실한 일정보다는 남편이 가게 됨으로써 자신이 가지 못할 이유가 생기니 더욱 잘된 것 같다고도 했다. 그리고 남편의 생에 첫 해외출장을 축하했다. 아내는 남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쿨한 사람이었고, 해외출장의 기회를 단칼에 접는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다.


아내의 적극적인 지원사격에 남편은 해외출장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생에 최초의 해외출장, 걱정이 산더미지만 마음은 기뻤다. 철이 덜 든 남편은 '에라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감추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폭탄은 출장 일정을 정리한 후 2주 뒤에 터졌다. 아기가 다니던 유치원의 폐원 소식이었다. 당장 새해의 시작과 함께 남편은 한국에 없을 것이고, 다녀와서도 10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기가 잘 적응하고 다니던 유치원이 사라진다니!? 쿨한 아내와 쿨한 척하던 남편은 더 이상 쿨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우선은 아기의 새로운 돌봄처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주변의 다른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연락을 돌렸지만 아기가 너무 어려 마땅한 자리가 없거나, 있더라도 비용이 부담스러울 만큼 많이 드는 곳 뿐이었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의 출근시간으로 인해 정규시간보다 조금 일찍 아기를 받아줘야 하는 옵션 때문에 아기를 맡길 곳을 찾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남편과 아내의 막막함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가능한 돌봄처를 찾아도 문제였다. 적어도 1~2주는 아기에게 적응기가 필요할 텐데, 변화의 소용돌이와 함께 남편은 자리를 비울 예정이라 모든 어려움은 아내를 향하고 있었다. 남편의 들떴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지만, 돌이켜서도 안되지만, 과연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남편은 조바심이 났다.


사실 남편은 알고 있었다. 조금 힘들겠지만 다 좋게 좋게 흘러갈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늘 그래 왔었다는 사실을. 아기의 주변에는 1분 1초 아기 생각뿐인 조부모가 있고, 자신의 아이인양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이모님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아이들보다 적응력이 뛰어나고 씩씩한 아기가 당당하게 새로운 환경에 발을 디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남편은 알고 있었다.


이미 다 알고는 있지만 걱정이 떨쳐지지는 않았다. 남편은 자리를 비운 사이 큰 변화를 맞이할 아기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충분히 전하고, 자가격리가 끝나면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의 면모를 다시 뽐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철없는 남편은 찝찝한 출장길에 오르고, 쿨한 아내는 폭탄을 안았다.


무사히 잘 다녀오고, 잘 견뎌내기를! 우리가족 화이팅!



덧) 남편의 마음은 잘 전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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