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반가운 취직 소식에 부랴부랴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를 돌봐줄 곳을 찾아야 했다. 어린이집 순번은 기대할 수도 없었고, 너무 어린 나이다 보니 받아주는 유치원도 없었다. 진취적으로 밖에 나가 아이 뉘일 곳을 찾아낸 아내 덕에 우리집 작은 인간은 동네의 작고 오래된 영어유치원에서 형누나들 사이에 낑긴 채 생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남편은 영어유치원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과도한 교육비를 지출함은 물론,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힐 아이의 미래를 앞서 걱정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신을 꼭 닮은 아기가 그저 평범함 속에 평안하게 성장했으면 했다. 그러나 저러나 남편과 아내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게 아기는 두 돌을 맞이하기도 전에 영어유치원에 맡겨졌다. 다행인 것은 생에 첫 사회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울고 떼쓰며 안 가겠다 하지 않았고, 일 년 이상 차이가 나는 어린 아기를 예쁘게 봐주는 유치원 형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젊지만 올곧게 아이들을 보육해주는 선생님을 만난 것도 큰 축복이었다. 그렇게 우리부부는 무사히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고, 아기는 두 돌 맞이 생일파티도, 할로윈 파티도, 크리스마스 행사도 형누나들 사이에서 즐길 수 있었다.
그랬던 유치원이 문을 닫았다. 일방적인 폐원 소식에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도 당황했다. 그것도 학기가 마치는 시즌이 아닌 학기 중에 맞이한 갑작스러운 폐원 소식이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까지 이제 막 쌀밥의 단맛을 깨우친 아기는 갈 곳이 없었다. 남편과 아내는 화가 나기 전에 걱정이 앞섰다. 힘겹게 보육할 곳을 찾은 지 고작 몇 개월 만에 이루어진 허망한소식이었다.
남편과 아내는 아기의 담임선생님과의 이별도 아쉬웠다. 아기의 첫 사회생활을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분이며, 매일매일 알림장에 부모와 떨어진 아이의 행동과 일상을 디테일하게 공유해준 분이고, 또 다양한 아이의 표정을 사진첩에 담아준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갑작스러운 퇴원통보에 원아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함께하던 선생님들까지 일상이 흔들렸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유치원의 폐원 소식은 모두의 일상을 혼란스럽게 했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했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점까지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편과 아내 또한 학기 중에 아기를 맡길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책임감 있는 아기의 선생님은 빌라 한 켠을 임대해 새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애초에 삐까번쩍한 어린이집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부족한 환경임에도개의치 않고 학부모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아기를 맡겼다. 아기의 생에 첫 선생님은 그만큼 신뢰가 가는 분이었다.
그렇게 우리집 작은 인간은 4살 형들과 함께 작은 빌라에서 오손도손 2개월을 더 보낼 수 있었다.
아내는 면접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했던 보육시설 찾기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3살짜리 아기(실제로는 이제 막 두 돌 된)를 맡아줄 곳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전화하고, 찾아가고를 반복하는 아내의 모습이 남편은 감사했다. 아내는 남편의 생각보다 책임감이 강했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으며, 현명하게 상황을 정리해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남편과 아내는 아기 뉘일 곳을 찾지 못했다. 반듯한 집이 있고, 사지가 멀쩡한 부모이지만, 직장노예가 육아와 사회생활을 동시에 소화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최악의 경우는 아기를 맡길 수도 있다고 미리 알림을 드렸다. 퇴근 후 우리집 작은 인간의 할비할미집까지 갈 경우 잠든 아기만 보게 되겠지만다른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과 아내는 혹시 모를 안타까운 미래를 대비했다. 그리고 퇴근 후 부모님 댁에서 잠든 아기만 바라보는 삶은 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육아란 참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일어날 지 예상할 수 없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남편이었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는 상황 대처가 더 힘들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