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아기한 말투로 아프다는 표현을 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남편의 장모님이 있는 자리였다. 처음 듣는 말에 당황함을 애써 감추며 어디가 아픈지 물었고, 아기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아기 배가 아파.."
어린이집 알림장에 묽은 변을 보았다고 기입되어 있었고, 종종 남다른 표현력으로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는 아기이기에 혹시 어린이집에서 변을 본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되묻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아프다는 표현을 한 아기는 많이 아프지는않은 듯했다. 표정은아파 보이지만 일그러지는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엄마 손은 약손이다, 아빠 손은 약손이다 하며 플라시보 효과를 기대했다. 아기의 배 위에 손을 대고, 부드럽게 살살 문질렀다. 평소 아빠의 손길을 거부하는 아기가 약손의 효과를 기대하며 얌전히 있어주니 맘껏 아기와 스킨십이 가능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스킨십을 맘껏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남편은 살짝 기분이 좋을 뻔했다. 물론, 금방 '이런 생각하면 안 되지'라며 생각을 고쳐먹었지만.
30개월을 가득 채운 아기는 여태껏 한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남편은 신생아 시절부터 탈 한번 나지 않는 이유가 매일 아기용품을 소독해온 자신에게 있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러던 아기가 아프다고 하니, 내 탓이건 아니건 곧바로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아기가 아프다고 할 때 부모들이 어떤 기분인지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그저 다 미안한 마음, 아빠가 미안하다는 마음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편으론 신기했다.
오래된 삶은 달걀을 먹였는데, 그 때문일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해서 팍팍 퍼줬는데, 그 때문일까. 고기 잘 먹어야 한다고 옆에서 부담을 줬는데, 그 때문일까. 아니면 아빠가 잘 안 놀아줘서 생긴 꾀병이려나. 남편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원인을 알아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원인을 찾느라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제야 처음으로 아프다는 표현을 한 아기가 실제로는 그동안 아팠지만 말을 못 한 것은 아닐까. 태어나서부터 아팠다면 이게 아픔이란 것을 알 수 있을까. 혹시 태어날 때부터 어딘가 아픈데, 그게 아픈 것인지 모르고 살고 있으면 어떡하나.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상의 영역까지 생각이 도달한 후에야 남편의 뇌는 쉴 수 있었다.
표현력이 좋고, 남편의 우문에도 현답으로 답하는(예를 들어 엄마가 좋아? 이빠가 좋아? 같은 물음에 다 좋다고 대답하는 식) 우리집 작은인간이 배가 아프다 하면 그냥 배가 아픈 것으로 끝인 것이다. 그 이상에 대한, 그 내면의 의미 등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음 듣는 자식내미 아프다는 말에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타공인 우리집의 소독왕이다. 소독왕은 배가 아픈 우리집 작은인간을 위해 보리차를 끓여 마시기로 했다. 한동안 맘 편히 마실 수 있도록 보리차 알갱이를 무려 1kg이나 샀다. 그리고 매일 밤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분리수거를 하는 혼자만의 시간에 일정 하나를 추가했다. 남편은 자기 전 보리차를 끓이기를 하루 일과에 추가함으로써 소독왕 타이틀과 좋은 아빠라는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기는 하루 밤이 지나고 나니 아프다는 소리가 없었다. 우습게도 밤새 배탈로 고생을 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자다 깨기를 수차례 하고 나니 남편은 깨달을 수 있었다. 냉장고 속 오래된 삶은 달걀을 아기와 나눠먹은 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꽤나 크다는 것을.
배가 아프다는 아기를 마주한 남편은 측은한 감정 이전에 부모로서 느끼는 미안한 마음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의 부모님, 우리집 작은인간의 할비와 할미도 그랬었겠지.당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