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황 Jun 05. 2022

저기.. 제가 들어야 하는 말인가요?

시니컬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

혼잣말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듣고 싶지는 않은 말들이 있습니다.


집 근처 편의점을 자주 갑니다. 아내와 아기가 잠든 깜깜한 밤에 분리수거를 마치고 편의점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잔 들고 야심한 밤거리를 한 바퀴 걷는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몇 개월 전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는 직원분이 바뀌었습니다. 나이가 지극하신 마른 체형의 새로 오신 직원분은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하신지 늘 혼잣말을 달고 사십니다. 과자를 고르는 중, 커피를 내리는 도중에도 그분의 혼잣말이 나지막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 혼잣말은 주로 불평불만일 경우가 많습니다.


"아유 X발 이건 또 왜 이렇게 있어?"


카운터에 빨대가 없다고 말씀드렸을 때 돌아온 '혼잣말'입니다.


카운터 뒤쪽 하단의 서랍장에서 새 빨대 뭉치를 꺼내야 하는데 하필 그 공간에는 진열된 다른 상품이 있었습니다. 부득이하게 상품을 치우고, 빨대를 꺼내고, 다시 진열상품을 놓아야 하는 상황. 사실 그 상품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양주와 칵테일 제조용 컵이 세트로 묶인 박스상품이고, 갖고 싶게 생겼기에 위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빨대를 꺼낼 때에는 욕지거리가 난무할 만큼 귀찮은 존재였나 봅니다. 빨대가 없다고 말씀드린 제가 다 민망해지는 순간입니다.


혼잣말이라도 다 들리게 험한 말을 하는 분들을 싫어합니다.


평상시 투덜거리시는 혼잣말도 듣기 좋지는 않지만, 제게 하는 말이 아닌 만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빨대를 꺼내 달라는 말을 한 당사자는 저고, 제가 앞에 있는데 욕이 섞인 혼잣말을 하고, 빨대를 꺼내 주면서 끝까지 툴툴거리시니 민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간만의 가족여행으로 찾아간 부산에서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유독 저희와 비슷한 일정으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 많았나 봅니다. 돌아오는 길, 부산역으로 향하는 택시기사님은 차가 왜 이렇게 많냐며 가는 내내 투덜거리셨습니다. 부앙, 부앙, 급가속, 급정거를 반복하시며 불만을 랩처럼 늘어놓으시는데, 아기를 안고 택시를 탄 우리부부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혼잣말이지만, 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시는 분들이 싫습니다.


차가 많은 것은 제 탓이 아닙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 시간 부산역은 차가 많은게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급한 것도 아니고, 빨리 가 달라 재촉한 적도 없는데, 기사님은 뭐가 그리 급하셨을까요. 그리고 그럴 땐 같이 맞장구를 쳐야 하는 걸까요?


동의하지 않는 의견을 반복해서 얘기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특히, 혼잣말인 척 얘기할 때면 더욱 싫습니다. 차라리 직접 동의를 구한다면, 제 의견을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차가 많다며 함께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차가 그리 많지 않았고, 차분히 신호를 기다리며 가도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반복되는 기사님의 혼잣말에(또렷하게 다 들리는 혼잣말) 동의하기는 어려워 무언으로 답했습니다. 호응할 수도 있겠지만, 마치 택시를 이용한 제가 죄인이 될까 싶어 가만히 있었습니다. 도저히 반응하기 어려운,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이기에 듣고만 있었습니다.


강하게 부정하지 못한 제가 싫습니다.


'알겠고,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 안전운전만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반복되는 급정거, 급출발에 몸과 마음이 살짝 쫄았었고, 기사님 또한 안전운전을 할 줄 아는 위인은 아니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조용히 그분만의 레이스를 즐기게 하는 편이 우리가족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듣기 좋은 혼잣말이면 좋겠지만, 불평불만을 말하는 혼잣말은 정말 '혼자'서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빨대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다음부터는 조금 먼 편의점에서 커피를 내려먹겠다 결심한 날, 부산여행이 끝나 서울로 돌아오던 날, 그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날 시간차를 두고 원투펀치를 맞았기에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빨리 가는 택시보다는 얌전히 가는 택시를 좋아하나 봅니다. 글을 쓰다보니 취향이 보이네요.

https://brunch.co.kr/@sungjai/36



매거진의 이전글 2명 자리는 없다는 식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