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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이트 Sep 27. 2017

음주사유를 읽고 한마디...

65번째로 읽게 되는 책 입니다.

 

나는 '술'이라 그렸지만 그대는 '사람'이라 봐줬으면 좋겠다.

나는 '술'이라 말했지만 그대는 '인생'이라 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술'이라 썼지만 그대는 '사랑'이라 읽었으면 좋겠다.

 

私有 : 술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다

思惟 : 음주에 대해 두루 생각하다

事由 : 술을 마시는 까닭

어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블로그 이름 그 자체가 '酒 & 책' ​인데 말입니다.

 

책을 주문하면서 '재밌겠다' 정도의 큰 기대는 없었던, 비슷한 '동료의식' 정도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술에 녹여있는 아주 큰 무게감, 그렇습니다. 아주 큰 무게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기위해 많은 준비가 있었던, 글을 만들어 대중에게 보이기 위해 참 많은 준비를 했구나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 양반도 '술과 책사이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방황하는 1人 이구나'

싶었습니다.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술과 책이 없었다면, 내 인생에서...' 

'술이 있어서 친구가 있는 것인지, 친구가 있어서 술이 있는 것인지?'

'책이란 친구를 마주보고 소주를 마실수는 있을지?'

 

​하지 않아도 될 생각이네요. 문득 '부질없음'이란 단어가 머리를 스칩니다. 살아지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세가지 私有, 思惟, 事由에 대한 농도가 아주 옅은 삶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여지는 것을 보고, 믿고, 말하고, 따라하는... 그렇게 본다면 공존하는, 그것도 나름 깊게, 현재의 삶은 어느 대사처럼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를 외치듯, '돈이 없지 깊이 없는 삶이 없냐'를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크게 외치게 됩니다.

 

'어떠한 행위에도 잘못이나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확신은 종종 억제하기 힘든 힘, 어쩌면 유일한 힘이 되어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애드거 앨런 포 <심술궂은 어린 악마> 중-

      

정답이라 생각하는 삶, 글쎄 모르겠습니다. 옳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명백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역시 정답이라는 삶에 헤메이는 모습... 역시 나오는 것은 말 줄임표 뿐입니다. 더 얼마만큼의 소주와 책이 몸을 채우고 빠져야 그 헤메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 또 한번의 말줄임표.


'나는 나 자시만을 관찰할 때면 불안해진다. 남과 나를 비교할 때는 안심이 된다'

-앙리 드 몽테를랑-

 

'적나라한 '나'를 피하려는 각자의 '나'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는 거야. 그렇게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주로 안주삼아 이야기꽃을 피우곤 하지. 일종의 회피와 망각의 집회인 셈이지만, 푸념과 불만과 분노같은 게 그래. 그건 자기보호본능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거니까. 술 먹을 때 우는 것보다 화내고 우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 건 그 때문이지'

​종종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술이란 내가 아닌 내가되어 회피하고 피했던 일을 하게 하는 강력한 합법적인 마약이다' 

​그래서 의지하고 기대다 보니, 바다의 神 넵툰 보다 酒의 神 박카스가 더 많은 사람을 溺死시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溺死라기 보다는 自殺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겠지만. 하지만 그 행위가 현재의 自殺 혹은 意圖를 뒤로 연장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지도 생각해봅니다.

 

'어른들은 보통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자유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더 사랑해. 그런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자책하고 죄책감까지 느껴. 다가온 자유의 기회를 뿌리치곤 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는 무엇가를 맹렬하게 하고 있을 때만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   

인생의 뫼비우스의 띠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헤어날 수 없는 딜레마, 바로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에서 뭔가를 의도하여 만들어 내도, 늘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허기는 소주가 채우게 되는 듯 합니다. 책에서 질문을 하는 어린왕자가 내 아들이 아니길 바라게 됩니다.


'지금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은, 별은, 새는, 벽시계는 대답하리라. "이제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 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해라! 쉬지 말고 취하시오! 술이든, 詩든, 德이든 무엇이든, 당신의 마음대로"'

-보들레르, <취해라> 중 <파리의 우울>-

 

'해질녘엔 의자를 사지 마라. 어떤 의자에 앉아도 다 편안할 테니...

 해질녘엔 술을 마시지 마라. 무얼 마셔도 다 꿀 같을 지니...'


​무슨 첨언이 필요하겠습니까? 구구절절히 읽는대로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지금 몇 시냐구요? 이제 취할 시간입니다.

 

'이미 오늘이 돼버린 내일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알콜중독자 놀이'라 명명한, 와이프와 아들의 여행동안, 금요일 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금요일 밤에 소주 2병에 맥주 몇캔, 취해 잠이들고 깨어보니 새벽, 동네 편의점으로 다시 소주와 맥주, 취해 잠이들고, 그렇게 일요일 오후에 마지막으로 눈을 떴던... 정말 오늘이 되어버린 내일을 보았고, 널브러진 소주병, 맥주캔, 참치캔, 과자 부스러기, 음식물의 사채에서 삶의 끝이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스스로 웃긴건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간과할 수 없을 알았습니다. 술을 통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던 책입니다. 촌촌살인의 삽화도 일품이었던 주변에 너무 추천을 하고 싶은 책입니다. 한번들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은 주5일을 酒5일로 표현한 글로 마무리를 합니다.   

 

주5일은 酒5일.

그러다 보니, 얼근한 기운으로 다음날을 보내기 부지기수.


그때마다 무엇인가 물색없이 흘리고, 놓쳐버렸다는 상실감.

그 상실감에서 비롯되는 자책감.

그 자책감에서 번지는 죄책감.

그래도 일상이라는 뻔한 '기계'를 잠시나마 정지시켰다는 일탈에서 오는 해방감.

그 해방감이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일말의 피로감.

그 피로감을 밑천으로 심신을 달그락거림을 나누는 동질감.

간밤의 무용담과 해장거리를 나누는 데서 오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는 안도감.

머잖아 사라질 숙취로부터 또다시 한잔을 기약하고 마는 무모함

 

그렇게 회사 다니던 5일이 흐르고,

주말을 심신의 진공 상태에서 우두커니 추스름.

어김없이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월요일 하루는 유독 긺.

이윽고 해름참이 되어 오후 여섯 시가 지나면, 금세 술 냄새를 맡고 여기저기 기웃거림.

미련한 시지프스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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