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 2-5] 안티코 카페 그레코
명품 매장이 즐비한 콘도티 거리 한 가운데에 뜬금 없지만 그 거리에서는 가장 로마스러운(?) 카페가 있다. 안티코 카페 그레코 (Antico Caffè Greco). 줄여서 '카페 그레코'라고도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카페 중 한 곳이며, 1760년에 오픈하여 지금까지 260년 동안 운영 중인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점이다. 지난 번 로마 여행에서는 시간과 돈의 여유가 안되서 들어가보지 못했었다. 그 후에 카페 그레코에 들어가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았었고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가보기로 했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중후함에 압도되어 잠시 문 열기 망설여졌었지만, 커피와 타르트 향 그리고 다른 관광객의 소리에 이끌려 들어갔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검은 수트에 보타이를 한 직원들이 눈을 사로 잡는다. 조명은 누구를 반기기 위한 불빛이라기 보다는 260년 전 그 때 그대로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느낌이었다. 입구에는 쿠키, 타르트를 파는 곳과 바(bar)에 서서 마실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테이블들이 있다. 한 복도를 들어갈 때마다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 통로 입구는 잠시 쳐다보게 만든다. 맨 구석 방 테이블에 앉고 싶었지만 이미 만석이라 그 사이 통로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았다. 고급풍 의자와 대리석의 테이블 조차도 입구에서 느꼈던 그 중후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몇 시간 만에 다리를 쉬게 했더니 짧은 신음과 함께 그제서야 피로함에서 눈을 뜨고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 볼 수 있었다. 벽에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액자들이 걸려있는데 이 카페와 함께 지내온 수 많은 명사들의 역사들이 담겨져있다. 진열되어 있는 그들의 초상화, 그림, 메모들을 보고 있으면 흡사 작은 개인 미술관에 온 기분이 든다.
지금 21세기에서 커피는 단순히 마시는 소비재에 불과하지만, 이 카페가 열였을 당시의 커피는 소비재라는 개념을 넘어 지식과 문화 창출의 상징물이었다. 카페 안에서 커피는 지식인들을 모았고, 토론하게 하고, 예술을 창조하게 만들었다. 카페는 어머니의 자궁이고, 커피는 예술과 철학이 창조되도록 도와주는 양수였다. 이 카페 또한 리스트, 괴테, 바그너, 안데르센, 멘델스존 등 유명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으며 지금 내가 숨쉬며 앉아 있는 이 자리들이 바로 그들이 앉았었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던 장소다.
커피 가격은 한 푼이 아까운 여행객에게 자비란 없었다. 바(bar)에 서서 마시면 보통 이탈리아 카페에서 마실 수 있는 에스프레소 가격이지만, 자리세가 포함된 가격은 상상도 못할 가격이다. 그러나 이 가격의 커피들은 이 곳을 거쳐간 위인들의 흔적과 온기가 함께 담겨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7유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켰다.
커피를 마시면서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켰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오래된 카페가 명품으로 둘러싸여있는 옆 건물들처럼 현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와이파이가 잘 된다는 것이었다. 느긋하게 작품들을 보면서 검색도 해보고, 잘 모르는 경우에는 웨이터들에게도 물어봤다. 미숙한 영어였지만 그 설명 속에서 이 카페의 전통적인 복장만큼이나 이 카페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전에 화장실을 썼다. 카페 중간 쯤에 지하로 내려가는 곳에 위치한데 화장실 입구에서 팁을 받는다. 돈은 내고 싶은만큼 내면 되니까 스페인 광장을 지나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여기 화장실을 사용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