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멩이 Jan 03. 2020

쓸데없는 감정

최은영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타심. 이런 것들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우리가 떠들고 다니는 것이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타인에 대한 질투와 경멸, 이기심이다. 머릿속으로는 그런 감정이 쓸데없고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생각하는 대로 감정이 움직이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 대한 연민은 보통 미미하고 짧으며, 누군가에 대한 경멸은 대개 강렬하고 길다. 애초에 그 연민이라는 감정조차 타인에 대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관계에 도움을 주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쓸데없는 감정이 우리를 지배한다.

  「먼 곳에서 온 노래」의 율랴와 소은은 쓸데없는 감정으로 관계를 파탄에까지 가게 한 인물들이다. 율랴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미진에게 질투를 느낀다. 미진을 도우면서 미진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더 이상 미진이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지 않자 미진에게 화를 낸다. 소은은 “미숙한데다 아프기까지 한 덜떨어진 인간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한국에 온 미진에게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율라와 소은의 자격지심은 비합리적이고 불필요한 감정이다. 바로 그 감정 때문에 그녀들은 미진을 떠나보내야 했다. 좁은 이기심과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나 미진을 아껴주고 배려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 아니다.

  미진은 엄격하고 상명하복식의 노래패 문화를 비판했다. 그녀는 노래패 구성원들에게 “고집불통에 독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노래패라는 관계에서의 배려와 존중이란, 큰 문젯거리도 아닌 일을 붙잡지 말고,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운동의 전통을 하나가 되어 지켜가는 일이다. 미진은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스스로도 고치고 싶었던 감정적이고 예민한 성격 때문에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미진의 이런 성격은 동시에 소은이 사랑했던 점이다. 미진은 존중, 배려, 연민 등의 갖가지 좋은 말로 기만하지만 실제로는 폭력적인 것들을 거부하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장례식에서 그녀를 미워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떨궜고, 율랴와 소은은 그녀를 기억한다.

  「미카엘라」에서 ‘엄마’의 ‘감사’는 지나쳐보인다. 엄마는 일이 안 풀리는 것에도 감사하며, “감사 타령”을 한다. 그러한 감사가 엄마의 딸 ‘미카엘라’에게는 초라한 현실에 대한 불합리한 기만처럼 느껴진다. 그녀에게 합리적인 일이란 “승패가 뻔한 링”에서 자신과 상관없는, 쓸데없는 일로 싸우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현실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려는 일이다. 그런데 엄마는 쓸데없이 교황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미사에 참석하고, 찜질방에서 우연히 만난 노인 때문에 광화문까지 찾아간다. 광화문광장은 미카엘라가 되도록 걸음을 빨리해 지나치려했던 곳이다. 불필요하게 도착한 광화문광장에는 ‘미카엘라’라는 딸이 있었던 또 다른 엄마가 있다.

  쓸데없는 감정이 우리를 지배한다. 배려보다는 질투가, 존중보다는 경멸이 우리를 지배한다. 쓸데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감정들이다. 그런 감정들을 배려나 연민이라는 단어로 덮고 넘어갈 때 우리는 기만에 빠질 것이다. 그 감정들을 제대로 응시할 때, 그것들은 우리를 윤리적이게 할 것이다. 그런 쓸데없고 어쩔 수 없는 감정들 중에는, 타인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사랑 혹은 애틋함도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배려나 존중은 도덕이지 윤리가 아니다. 윤리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 쓸데없는 없는 감정에 대한 주체의 태도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힘'이 되는 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