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유감, 문유석 저, 21세기북스, 2014
문유석 판사의 글은 예전에 한겨레 신문 구독할 때 자주 접했었다. 그때 이미 ‘판사유감’이라는 책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구입을 하게 되지는 않았다. 막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고 해야 할까?
8월 말, 2학기가 시작되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책을 읽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서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간이 배정된 날, 우리 반 아이들을 이끌고 우리 학교 도서관으로 갔다. 거기서 '나도 책 한 권 골라 읽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책장을 보다가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책이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에 책을 빼서 앉아 읽었다. 프롤로그부터 첫 장까지 읽는데 재밌었다. 현직 부장판사가 자신의 생각을 글로 과감하게 썼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 공직사회는 상당히 경직된 분위기여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이지 않은가? 내가 속한 교사 집단이나 판사 집단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조직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것의 원인에 대한 고찰, 해결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책으로 낸다는 것이 참 멋졌다.
이 책은 평소에 판사들이 많이 보는 커뮤니티에 문유석 판사가 쓴 글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그걸 책으로 낼 때 조금씩 수정을 한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두 가지 키워드는 ‘비판적 사고’와 ‘공감’이었다.
문유석 판사는 비판적 사고를 아주 잘하시는 분 같다.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보는 힘. 나는 이것이 비판적 사고라고 생각한다. 법원에서 있는 보편적인 현상들을 낯설게 보며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는 그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도 경직된 교직 사회에서 비판적 사고를 하고, 그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나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공무원 사회에서 비판적 사고를 하면 피곤하다. ‘모난 정이 돌 맞는다고’ 주변 사람들이 참 싫어한다. 내가 부장회의에서 교장 선생님이 무엇인가 하겠다고 하면 “교장 선생님. 그런데 그건 왜 하시려는 거죠?”이렇게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곤 했었다. 어쨌거나 공무원 조직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비판적 사고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키워드는 ‘공감’이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공감’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떤 것을 원하지 않는지를 정확하게 캐치해야 내가 꼰대가 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을 정확히 하는데도 ‘공감’이 필요하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한데, 문제의 원인은 당사자들을 인터뷰하거나, 관찰하거나, 내가 그 상황이 되어 봄으로써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때 꼭 필요한 능력이 ‘공감 능력’이다. 이 책에서도 ‘공감’에 대해 강조하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나는 이 두 가지 키워드를 책에서 접하며 이 저자가 정말 지식적으로 아는 것도 많고 능력 있으며, 아는 것도 많은 판사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종종 교육 분야, 일반적인 사회 분야에 대한 내 생각을 블로그에 쓰곤 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책으로 엮어 집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보며 그런 나의 행보에 힘을 얻을 수 있어 좋았다. 다만, '판사의 글은 사회에서 우러러보겠지만, 교사의 글은 과연 우러러 봐줄까?' 하는 걱정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야겠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책을 읽었고, 독서 감상문을 이렇게 쓰고 이야기해 주었으니, 우리 반 아이들도 책 읽고 가볍게 이야기해 볼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책 읽고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지.
ps. 이 책의 한 부분 중 가르치는 문화에서 ‘질문’과 ‘격려’의 중요성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가정과 학교 교육이 이렇게 바뀌길 희망하고, 저 또한 이렇게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