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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 Sung Aug 14. 2016

'미움받을 용기2'를 읽고...

독서 서평 |  기시미 이치로 + 고가 후미타게, 2016, 인플루엔셜

  작년에 '미움받을 용기1'를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나를 많이 되돌아보았다. '나는 정말 용기 없는 삶을 살았구나. 남의 시선을 계속 신경 쓰며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소신껏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남의 기분을 헤아려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100%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용기가 생겼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히 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어떤 지인이 미움받을 용기2를 읽었다고 서평을 썼다. 그 글을 읽고 미움받을 용기2를 바로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했다. 보통 어떤 책의 후속편으로 나온 책은 전편보다 재미없다고 한다. 하지만 미움받을 용기2는 청년이 교사가 된 다음의 이야기이기에 교사인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책을 좋아한다.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 책이 도움이 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경험은 ‘나를 반성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메타 인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경험을 주는 책이 좋다. 이번에 읽은 ‘미움받을 용기2’라는 책은 나에게 그런 경험을 안겨주었다. 정말 너무나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교사에게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가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급 운영이든 수업에서 ‘상’과 ‘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룬다. 학생 입장에서 숙제를 해오면 스티커를 하나 받고, 해오지 않으면 매를 맞는 것이 전형적인 초등학교 학급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상과 벌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칭찬한다는 행위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라는 측면이 있고, 그 목적은 상대를 ‘조종’하기 위함이다”라고, 그러니 칭찬해서는 안된다.” 145쪽


  보통 ‘칭찬’은 절대 선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 생각에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왜 교장, 교감이나, 선배교사들이 무언가 큰 일을 맡기기 전에 보통 ‘칭찬’을 하고 나서 큰 일을 맡기지 않았던가? 그 칭찬이 순수한 칭찬인가?

 그리고 '칭찬받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모이면 그 공동체에는 ‘경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남이 칭찬받으면 분해하고, 자신이 칭찬받으면 우쭐해한다고 한다.(150-151) 정말 반성하게 만드는 한 문장이다. ‘인정 욕구’에 매달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나보다 칭찬받는 사람에게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되고, 경쟁심이 생긴다. 정말 맞는 말이고, 반성해야 하고, 앞으로는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학급 아이들 중에도 교사의 칭찬에 목마른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칭찬을 해 주지 않으면 꽃이 시들 듯 학교생활이 재미없게 된다. 그리도 다른 친구가 칭찬받으면 시기와 질투의 눈길을 흘린다. 그 후 이런 종류의 학생들은 문제 행동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문제 행동의 심리적 단계를 5단계로 제시하였다. 1) 칭찬 요구, 2) 주목 끌기, 3) 권력 투쟁, 4) 복수, 5) 무능의 증명이다.


  1) 칭찬 요구

    이 단계의 목적은 칭찬받는 것,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동체 안에서 특권적 지위를 얻는 것’이다. 상당히 정치적 행위로 인정 욕구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여기서 부모나 교사가 칭찬하지 않으면, 불만을 품거나 분개한다. 이 단계의 해결책은 ‘착한 행동’을 했을 때 주목하는 것이 아닌, 평소 그 사람의 ‘관심사’에 주목하고 공감해야 한다. 교사가 해당 학생에 대하여 끊임없이 평소의 관심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2) 주목 끌기

  1단계의 실패, 즉 착한 행동을 했는데 칭찬받지 못한다면, 칭찬받지 않아도 되니까 어쨌든 ‘주목을 끌자’라고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 아이들의 행동 원리는 ‘못된 행동’이 아니라 ‘주목받는 행동’이다. 결국, 주목받아서 ‘특권적인 지위’를 얻으려고 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확고히 ‘있을 곳’을 원한다.

   이 단계에서는 적극적인 아이들과 소극적인 아이들, 두 부류로 분류가 된다. 적극적인 아이들은 사회나 학교에서 정한 사소한 규칙을 깨는 것, 말하자면 ‘짓궂은 장난’을 쳐서 주목을 받으려고 한다. 소극적인 아이들은 모자란 아이로 행동함으로써 주목을 끌고 특별한 지위를 얻으려고 한다. 존재를 무시당할 바에야 야단을 맞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아이들에게 ‘존경’을 표함으로써 행동이 나아질 수 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알려주면 된다. 하지만 3단계부터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3) 권력 투쟁

  이 단계의 아이들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끊임없이 도발하고 싸움을 건다. 그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한다. 특권적인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아주 감당하기 힘든 단계이다.

  이 단계를 대표하는 단어는 ‘반항’이다. 부모와 교사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며, 물건을 훔치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태연히 규칙을 어긴다.

  반면에, 소극적인 아이들은 ‘불복종’ 한다. 아무리 엄한 말로 야단을 쳐도 공부하거나 배우기를 거절한다. 어른들의 말을 철저히 무시한다. 특별히 공부하기가 싫다거나 공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저 불복종을 통해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이 단계에서는 해당 학생과 맞서면 안 된다. 그럼 반항하는 학생이 좋아한다. 이때는 맞서지 않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4) 복수

  이 단계가 아이들 마음은 다음과 같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권력투쟁에 나섰지만 당해낼 수가 없다.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특권적인 지위를 얻기도 어렵다. 상대가 도발에 응하지 않아서 패배를 당한다. 그렇게 해서 싸움에 진 사람은 일단 물러난 후에 ‘복수’를 시도하게 된다.

  복수의 단계에 들어간 아이들은 정면에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못된 짓’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가 싫어하는 짓’을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극적인 아이들은 ‘스토킹’을 하게 되고, 소극적인 아이들은 ‘자해’를 한다.

  만약, 우리 반에 그런 아이가 있다면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아이들의 목적은 ‘교사에 대한 복수’기 대문이다. 이쯤 되면 이제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제3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5) 무능의 증명

  ‘더 이상 나에게 기대하지 마’라는 생각이 ‘무능의 증명’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증명’하려고 한. 누가 봐도 모자란 사람처럼 행동하고, 모든 일에 무기력해져서 간단한 과제도 하려고 들지 않는다. 머지않아  '모자란 나’가 진정한 나라고 믿게 된다. 이 단계도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전부이다. 그래서 보통 3단인 ‘권력 투쟁’에서 멈출 수 있도록,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문제 학생들의 행동 발단 단계를 읽으며 정말 무릎을 탁 쳤다. 나 또한 학창 시절에 저런 단계로 반항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반에도 저런 아이들이 있었다. 3, 4,5단계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2단계까지 간 아이들을 많이 만났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음부터는 그 아이 자체를 존중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다음 부분을 읽으며 또 한 번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잘못한 행동에 대해 ‘반성문’을 쓰게 하는 교사들의 전략이다. 이 책에서는 벌은 아무 효과가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학생들에게 아무리 벌을 주거나 야단을 쳤다고 해서 학생들의 행동이 좋아지던가? 계속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이것은 ‘야단친다’라는 방법이 교육상 전혀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자네는 학생들과 말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귀찮아서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야단을 치는 걸세. 분노를 무기 삼아 꾸짖음이라는 총을 들고 권위의 칼을 들이대지. 그것은 교육자로서 미숙한, 또는 모자란 태도일세 127


  교사가 잘못한 학생에게 ‘반성문’을 부과하는 것은 사실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의 만족이다. 나는 '잘못한 아이를 지도했어’라는 증거를 남기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의 네 번째 이야기에 나를 위한 한 문단이 있었다. 나는 ‘인정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관리자나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면 그것을 원동력으로 계속 열심히 하곤 했다. 그런 나에게 충격적인 문단이 하나 있었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일을 통해 인정받는 것은 자네의 ‘기능’이지 ‘자네’가 아니야. 더 뛰어난 ‘기능’을 가진 자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쪽으로 몰리겠지. 그것이 시장원리. 경쟁원리라는 걸세. 그 결과, 자네는 언제까지나 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속감도 얻지 못하겠지. 230


 맞는 말이다. 그래서 진정한 소속감을 느끼려면 ‘타인을 신뢰하고 교우의 관계를 맺으라’고 충고한다. 사람들과 진정한 신뢰관계를 맺어야지 업무적으로만 인정받으면 그 조직의 부속품으로 존재하고 만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어준 문단이다.  

  모든 내용을 이 글에 담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분 일부만 이 글에 담았다. 나머지 부분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아들러의 심리학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참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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