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의 밤길 더듬기

리스본(8) / 포르투갈

by 명진 이성숙

리스본의 밤을 더듬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개선문을 지나 아우구스타 거리를 걸었고 알파마의 골목을 28번 트램과 함께 누볐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와 산타루지아 전망대,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그라사 전망대, 푸니쿨라를 타고 알칸테라 전망대에 올랐다.

국립 판테온의 웅장함과 600년이 넘은 벼룩시장에 다녀왔다. 리스본 대성당과 성 안토니오 대성당에서 425 다리를 건너 예수 상까지 다녀왔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흔적을 찾느라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오에이라스에도 다녀왔다. 호세 사라마고의 위대함도 보았다.

그러느라 닷새가 지났다. 마지막 날은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호텔을 나섰다. 흐린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우산 가지러 들어갈까 망설이다 그냥 길 위에 나선다. 호텔이 있는 곳은 지하철 레스토라도레스 역 앞. 호텔을 나서 오른쪽으로 5분쯤 걸으면 로시오 광장이다. 로시오 광장 분수대를 지나 번화가를 뚫고 걸어 카페 아 브라질레이리아까지 왔다. 비는 다행히 약해졌다. 브라질레이리아에서 이른 점심을 마치고 카페와 나란히 붙은 고서점으로 들어간다. 좁은 입구로 들어간 서점은 안으로 꽤 길게 계속된다. 오래된 귀한 서적뿐 아니라 음반과 그림, 과거를 기록한 사진들과 도자기까지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퀴퀴한, 그러나 기분 좋은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사람을 자꾸만 안으로 이끈다.

파두의 여왕 아멜리아의 음반을 먼지 속에서 찾아내고 쾌재를 부른다. 미국 팝 가수 음반 두 개를 더 사고, 페르난두 페소아의 소설과 시집 메시지까지 들고 나온다. 배불리 먹은 식사처럼 나는 포만감에 젖는다. 책과 음반이 비에 젖지 않도록 외투 속에 단단히 넣고 가까운 스타벅스로 바삐 걷는다. 따끈한 캐러멜 마끼아또를 주문하고 바깥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시간의 흐름을 이렇게 시시각각 체감하기도 참 오랜만이다. 마지막 밤이다. 리스본의 마지막이고 60일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마지막이란 사람의 의식을 이리도 밀도 있게 이끄는가. 몸이 냉기에 굳는 줄도 모르고 나는 세 시간이나 그 자리에 앉아 아이패드 자판을 두드리다 일어난다. 호텔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

국화차를 끓여 침대 속으로 발을 밀어 넣는다. 암스테르담에서 산 작은 전기 패드가 요긴하게 쓰인다. 발은 금세 따듯해지고 졸음이 온다.

잠에서 깬 나는 토스트와 슈가 애플, 먹다 남긴 오렌지 주스를 차례로 꺼내놓고 속을 채운다. 몇 시간 전, 서점을 나설 때 느끼던 포만감은 그새 어딜 갔는지 출출하다.


파두 식당


오후 6시다. 마지막 밤, 벼르고 미뤄 두었던 파두 공연을 보기로 하자. 아직 희부옇게 색을 드러내고 있는 하늘을 우러르며 길을 나선다. 가파른 돌계단을 100개도 넘게 걸어 파두 공연이 있는 식당을 찾아 기웃거린다. 식당을 지날 때마다 호객이 극성이다. 메뉴가 맘에 드는 집을 골라 안으로 들어간다. 곧 공연이 시작된다. 운 좋게 무대 앞에 자리를 잡는다. 파두는 포르투갈의 한과 정서를 담은 포르투갈 전통음악으로 작은 기타처럼 생긴 현악기 하나에 의지해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그 리듬이 한국의 트로트와 닮았다. 가사가 궁금한 채로 리듬에 빠져든다.

오늘은 양력 3월 5일, 내 생일이다. 장난기가 발동한다. 맥주나 한 병 서비스받을까 싶어 직원을 불러 오늘이 내 생일임을 밝힌다. 잠시 후, 놀라운 광경이 벌어진다. 파두 가수가 갑자기 생일 축하곡을 연주하고 매장 손님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생일 축하 노래를 합창한다. 옆 테이블 여자 손님이 맥주잔을 치켜들며 덕담까지 해 준다. 이런 이런… 사고를 친 거 같지만, 쑥스러운 감격이다. 두 시간가량 계속되는 파두 공연을 절반쯤 보고 밖으로 나온다.



28번 트램 따라 리스본의 밤 산책


도시의 야경을 보려는 욕심에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감동적 장면에 산타루지아 전망대와 알칸테라 전망대의 야경이 나온다. 그 실경을 보고 싶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산타 루지아까지 1.6km라고 뜬다. 도보 15분 정도 거리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걷는데 28번 트램이 다가와 선다. 산타루지아 전망대 앞은 28번 트램 정류장, 리스본 패스는 아직 하루가 남았다. 나는 얼른 트램에 오른다. 전망대 앞은 야경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불빛으로 수 놓인 알파마 마을이 낮과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사람들 틈에서 요리조리 사진을 찍은 나는 다시 트램을 타고 카페 브라질레이리아까지 내려온 후 로시오 광장 방향으로 언덕을 내리 걷는다. 길고 가파른 계단 아래에 체리주 진지나를 파는 가게가 있다. 한 잔 1.5유로. 알코올에 약한 사람도 거뜬히 마실 만큼 달달한 진지나는 술 보다 주스에 가깝다. 리스본의 밤길은 위험하지 않다. 며칠 째 같은 길을 오간 나는 건물 모퉁이에 자리 잡은 노숙자와도 얼굴을 익혔다. 내가 지날 때마다 손을 흔들어 주던 그가 때 묻은 이불을 말아 덮고 잠들어 있다. 그의 얼굴은 안쓰러움 보다 평온함을 지녔다. 그가 잠든 도로 반대편에는 하루의 노동을 끝낸 외발 자전거가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다. 호텔 네온사인이 햇살인 양 그들을 비춘다.

425 다리(좌)와 425 다리 톨게이트(우)

425 다리를 건너 한참을 걸어 예수상에 이르렀다. 브라질의 예수상과 마주 보고 서 있는 리스본의 예수상이다.


예수상 찾아가는 중.


파두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과 계단 아래 좁은 공간에 차려진 진지나 가게

파두 가수가 자신의 공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 귀퉁이 흑백 사진이 파두의 여왕 아멜리아다.


리스본의 고서점


리스본의 밤‘s

28번 트램과 하루치 수고를 내려놓은 채 잠든 노숙인, 파두 공연장을 보러 도시의 전망대를 찾아 수없이 오르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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