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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진 이성숙 Jan 02. 2024

정초에 쓰는 반성문, 그리고 앞으로

                                                                 

정호승 시인의 우화, 「주머니 달린 수의」를 읽었다. 김 씨는 주머니 달린 수의를 맞추러 온 노인들에게 주머니에 무엇을 넣고 싶은지 묻고, 그중 오직 한 분의 수의만 만들어 준다. 수의 주머니에 사랑과 용서를 넣어 가겠다던 사람의 수의였다. 그러나 노인은 그 수의를 입지도 못하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죽음이 그리 급작스럽게 올 줄을 노인은 몰랐으리라. 2024년의 용은 내게 각별하다. 하필 환갑이기 때문이다. 삶이 반환점을 돌았다 싶어서인지 수의를 맞춰 놓고 입지도 못하고 간 노인이 내가 될까 두렵기만 하다.     


수년 전, 50을 막 넘겼을 즈음에 썼던 글이 있다. 나이 들기에 대해서. 그때 나는 나이에 걸맞은 속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예순을 불러 맞으리라’ 했다. 짐짓 예순에는 그럴듯한 품위와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던 게다. 그러나 예순에 다다른 나는 살진 속사람이 되었는가.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시기나 질투에서 멀어졌는가…. 알 수 없다. 현실은 더욱 팍팍해졌고 시간은 초조하게 흘러간다. 하던 일도 접는 나이라는데 나는 경험도 없는 식당을 시작하여 반년도 못 가 문을 닫았다. 소위 망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습성이 만든 결과다. 나는 그 일로 의기소침해 있다. 주변에서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돈은 또 벌면 된다, 돈을 안 잃었으면 병이 났을지도 모른다, 액땜했다 치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나이에’ 할만한 실수는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몹시 괴롭다.    

  

오십 무렵에 기대했던 예순의 나는, 노닥노닥 일상을 거니는 사람이었다. 국화차를 마시며 계절을 음미하거나 집으로 문우들을 초대하여 막걸리를 대접하고 때론 호젓이 여행도 하는, 그런 것이었다. 밀려드는 증정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짧은 지식으로 후배 작가의 글에 훈수를 둘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금의 나는 여전히 삶에 허덕인다. 날려버린 돈에 가슴 쓰려하고, 고갈된 정서로 옹졸한 문장만 만들어 낸다. 마음의 여유도 현실적 여유도 없다 보니 손은 자꾸만 작아져 사람 노릇 하기도 어려워만 진다. 사람됨이 이리 더딘 줄도 모르고, 예순을 불러 맞겠다 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 되었다. 나 이제 일흔은 힘껏 밀어내 보련다.     

 

초면의 사람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선배 작가 한 분을 만났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면서 취미로 글을 쓴다고 한다. 그이 뒤에 내 차례가 왔다. 나는 그 선배를 의식하여 '저는 전업작가'라고 날을 세워 말했다. 나는 한 번도 글을 쓰면서 여가나 심심풀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귀스타프 플로뵈르는 글쓰기에 대해 '아주 특별한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내게도 글쓰기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육십이 되어서도 치기로 일을 그르치며, 신중함이 부족하여 실수를 만드는 게 나다. 남들이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젊을 때 배운 것들을 나는 이제 배우느라 허둥댄다. 한마디로 인생에 서툰 자다. 이러다 정녕 삼베 조각 하나 못 걸치고 가는 건 아닐까. 이 거대한 불안 앞에서 나를 벼리는 것이 글쓰기다. 만일 내가 누군가에게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이 ‘특별한 삶의 방식’ 때문이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글쓰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개의 일이 거듭할수록 익숙해지고 쉬워지는 법인데 나는 글쓰기에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는다. 계속해서 높이를 올리는 허들처럼 나는 써 갈수록 한계와 마주친다, 내 인생처럼. 장대에 걸려 허들 넘기에 실패한 글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묻혀 버리기 일쑤다, 두려움으로 덮어버린 식당처럼.      


나의 용띠해 결심을 발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순의 나는 글을 쓰리라, 삶이 멈추지 않도록. 모든 결정에 조금은 신중하도록 하자. 의젓한 일흔으로 가는 시작이다. 아껴 쓰자, 날려버린 돈을 애도하며.      

아, 잘된 인생은 끝없는 긍정 위에 놓인다. 지난 10년을 망쳐버렸다고 남은 시간마저 그곳에 매몰시킬 수는 없다. 다행히, 나는 용띠다! 청룡의 기운이 창연한 때이니 도움닫기 하기에 이보다 좋으랴. 암만 밀어내도 일흔은 오고야 말 테니 높이 날아 찬란한 일흔을 만나자. 준비 없이 맞는 새해지만 결국 잘될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많이 마~~니 받으세요. 그림은 독도화가 권용섭 화백이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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