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는 뭍을 향해 앉는다
노을이 아름답다기에 오후에 길을 나선다. 태안반도 기지포 일몰 저녁 7시 19분. 여름이라서인지 해가 더디 진다.
기지포 앞바다에는 해안선을 따라 소나무 숲이 늘어서 있다. 늦여름 피서객인 듯 곳곳에 울긋불긋 텐트도 보인다. 나는 솔숲을 산책하고 젖은 백사장에 방수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간이 텐트를 펼친다. 저녁이 되자 기온이 내려간다. 바닷바람이 서늘하게 팔뚝에 소름을 돋운다. 이 작은 텐트는 이럴 때 제격이다. 온실처럼 작고 둥근 텐트 안에 몸을 감추고 노을을 바란다.
하늘이 물들기 시작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갈매기 떼가 공중을 뒤덮더니 이내 모래톱에 내려앉는다. 썰물로 바닥을 드러낸 해변에 모래톱이 장관이다. 모래톱은 새들의 먹거리 장터다. 새에게 쪼아 먹힌 게 껍질과 피조개살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게가 갓난쟁이 손바닥만큼씩 제법 크다. 해는 사위어 가는데 새는 날아들어 잔치를 벌인다. 극장의 시그널 영상처럼 황홀한 광경이다.
나는 갈매기 떼 촬영 욕심으로 휴대전화기 카메라를 연다. 자그마한 렌즈 안으로 갈매기가 가득 찬다. 그런데, 넋 놓고 보자 하니 희한한 광경이다. 갈매기가 하나같이 바다를 등지고 앉아 있다! 바다를 등졌다기보다 언덕을 향해 앉았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언제든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해풍을 뒤에서 받는 게 좋으리라. 노을을 보겠다고 악착같이 달려온 내게 보란 듯이 뒤돌아 앉아 있는 새 떼라니, 침몰하는 것은 사라진다는 나의 무의식이 각성한다. 일몰에 애타는 것은 오직 나다. 생명을 위한 각오 외에 잡생각이 없는 갈매기는 노을을 보기 위해 바다에 오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새는 일몰에 연민하지 않는다. 다시 날기 위해 날개를 접는 것처럼 다시 떠오르기 위해 태양이 저문다는 것을 갈매기는 이미 안다. ‘저물다’와 ‘날다’가 양면 같으나 실상은 같은 면인 뫼비우스 띠라는 사실을.
아직 높이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텐트를 벗어나 해변을 걷는다. 노을을 보려는 두세 무리 외에 인적 없는 해변에 새 발자국이 조로록 찍혀 있다. 발자국 끝에 떨어진 하얀 깃털, 갈매기는 먼 길 떠나기 전 이곳에서 털을 골랐나 보다.
붉게 젖은 바다가 검은 빛으로 변해간다. 하루치 노동을 끝낸 일꾼처럼 새들이 단잠에 빠져 있다. 바다를 등진 채.
태안반도 창기리 기지포 해수욕장. 바닷물이 빠지면 모래톱이 드러난다.
기지포 거꾸로 갈매기: 갈매기 무리가 바다를 등지고 앉아 저녁을 맞는다.
일렬로 난 새 발자국 위에 깃털 하나가 떨어져 있다. 다시 오마는 약속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