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첫 기항지 마르세유 항구 / 프랑스
60일 여행 기간 중 일주일을 빼 지중해 크루즈에 나선다.
바르셀로나 승선하여 ‘마르세유- 제노아 - 치비타베키아, 로마 - 팔레르모 항, 시칠리아 - 발레타 항, 몰타’에 각각 기항하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크루즈 여행 감상은 긍정과 부정, 두 축의 공존이다. 아쉬움이 컸다는 뜻이다. 배 안에서는 느긋한 시간과 넘치는 음식, 수준 높은 공연을 즐겼지만 기항지 여행은 약간 흐림 정도에 해당한다.
보았으나 본 것이 없는 듯한 기항지 여행의 아쉬움 때문에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는 이 여행기에 지중해 크루즈를 올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자니 60일 중에 일주일이 비어 버린다. 제목에 위배된다. 결국 쓰기로 했다. 여하간 내 소중한 시간의 발자취니까. 독자에게는 여행기라기보다 크루즈 여행 팁을 드리는 것으로 글쓰기 소임을 다해볼 생각이다.
가장 큰 실수는 기항지 여행 방법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기항지 여행 옵션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선사 운영 excursion 선택. 둘째, 현지 여행사 단체 투어 합류. 셋째, 한인 여행사 단체 투어 합류. 넷째, 자유여행이다.
선사 제공 옵션은 말 그대로 크루즈 회사 자체에서 마련한 여러 일정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자체 운영이므로 대형 버스가 배차되고 배가 연착을 하든 일찍 떠나든 개인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가이드가 동행한다. 나는 모든 기항지 일정을 이 방식으로 했다. 나의 불만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일정이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 사람이 모였으므로 가이드는 현지어와 영어로 번갈아 설명한다. 불필요한 시간이 소요된다. 언어가 다른 많은 사람을 통솔해야 하므로 인솔자나 가이드도 정신없어 보인다. 그들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빨리 배로 돌려보내고 싶어 할 뿐이었다. 가이드는 중요한 지점 한 두 군데를 겉핥기로 보여주는데, 그것마저 입장료가 필요한 내부관람 등에는 매우 인색했다.
선사 운영이 아닌, 현지 여행사 투어도 사정(여러 언어 사용 고객을 상대한다는 점에서)은 비슷하지만 그들은 영어 사용자 그룹과 현지어 구사자 그룹을 따로 모집한다. 통역으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 가이드의 피로감이 덜할 것이고 듣는 사람도 집중하기 쉽다. 규모가 작아서(대형 코치 버스가 아닌 경우가 많다) 좀 더 밀도 있는 일정이 된다.
미리 계획한다면 한인 여행사에 합류할 수도 있겠다. 한인 여행사는 배 안에 들어오기 어려운 점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크루즈 안에 차려진 여행사 부스에 한인 여행사는 없었다. 그러나 예약을 미리 할 경우, 항구로 시간 맞춰 나와준다. 알찬 여행을 위해서 약간의 부지런함을 발휘한다면 한국어로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추천은 자유 여행이다. 기항지 도착 후 배를 벗어나면 현지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다. 당일 여행이고 시간이 넉넉지 않으므로 택시 이용도 좋은 방법이다. 택시비나 선사 옵션 비용이나 별 차이 없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하루를 충분히 즐기기에는 이 방법이 최고다.
첫 기항지는 프랑스 마르세유 항구다. 코치 버스를 타고 아비뇽과 엑상 플로방스로 들어간다.
1)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 교황청, 콘크라베가 열리던 방을 본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교황청은 세계적으로 가장 크고 중요한 고딕 양식 건물로 꼽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309년 클레멘스 5세 교황이 머물면서 교황청으로 사용한 곳이다. 이후 7명의 교황이 이곳에 머문다. 이때를 유대인이 바빌로니아 제국에서 식민지 생활한 것과 비교해 아비뇽 유수라 부른다. 안으로 들어가면 교황청을 창건한 베네딕투스가 만든 북쪽 구궁전과 클레멘스 6세가 증축한 신궁전으로 나뉜다. 성벽 높이 50미터, 벽 두께 4미터로 거대한 요새처럼 보이는 석조건물이다.
아비뇽 교황청 콩쿠르라베가 열리던 방이다. 차기 교황이 결정되면 저 굴뚝으로 연기를 피워 올렸다.
2) 엑상 플로방스, 세잔의 길
마르세유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물의 도시 엑상 플로방스는, 세잔의 도시로도 통한다. 물의 도시라 불리는 만큼 작은 교차로마다 아름다운 조각과 함께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길바닥의 ‘세잔의 길’ 표지를 건성 봤을 뿐 폴 세잔의 아뜰리에와 코몽 아트센터, 세잔 미술관 등은 모두 지나쳐 왔다. 코치 버스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생투 빅투아르 산이 보였다는 것으로 위로 삼아야 할까. 세잔의 그림 40여 점에 등장하는 생투 빅투아르는 그리 높지 않아 천천히 걸어 올라도 좋은 산인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생투 빅투아르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는 리틀 세잔들이 모여들어 생투 빅투아르를 그리고 있다 한다. 파리의 몽마르트르와 비견되는 풍경이 아닐까. 세잔이 다녔던 미술학교를 먼발치에서 보았고 그의 발자국처럼 도로에 새겨진 세잔 사인을 사진에 담았다. 잠시나마 노천카페에 앉아 남프랑스의 풍요를 느꼈어도 좋았을 것이다.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 아쉽다.
아래 사진들은 길을 걸으며 무작정 카메라만 들이댄 세잔의 흔적들이다.
거리의 세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