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당한 꿈에 대한 이야기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어느 정도 지루할 거라는 걸 각오했다. 사실 나는 윤동주 시인을 소재로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이준익 감독의 발상 자체가 좀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첫째로는 흥행이 당연히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윤동주 시인의 짧은 삶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영화화 시킬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했을 때도 이건 정말 어려운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과제는 주변에서 권장하기 보다는 하지 말라고 말리는 과제인데, 그걸 굳이 하겠다고 나섰다면 꼭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그 대답이 당연히 영화에 있을 것이고...
'암살' 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항일독립투쟁의 활극적인 측면은 당연히 없을 것이고 그래서 지루할 것이고, 많은 것이 좌절 당한 윤동주 시인의 삶의 어두운 부분이 다루어져야 할 텐데 (사실 윤동주 시인은 생전에 등단도 못하셨고, 본인의 시집의 출판도 보지 못하셨다. 백석이나 정지용 시인과는 달리 생전에 '시인'이라는 칭호도 못 누리신 분), 그리고 짧게 생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이 삶을 재구성 하려면 많은 부분을 사실보다는 상상력에 의존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했을까. 이러한 의문이 이 영화를 보게한 원동력이었다 (심지어 윤동주 시인은 익히 알려진 로맨스 같은 것도 없다)
내가 생각해 볼때, 이준익 감독의 해법은 어떻게 보면 (정말 단순하게도) 두가지였던 것 같다.
첫번째는 윤동주의 시대를 잘 살리는 것
두번째는 윤동주의 '시'를 잘 살리는 것. 첫번째 해법은 송몽규(윤동주의 친척이자, 같은 고향 출신 절친이자, 많은 면에서 윤동주와 상반된 다른 캐릭터를 지닌 인물)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많은 부분이 해소가 되고 두번째는 윤동주의 '시'를 적절한 장면에 삽입하고 낭송하는 것에 의해서 해결이 된 것 같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윤동주의 시가 낭송이 된다 그것도 많이).
영화를 보고 먹먹함이 한동한 가시지 않았다. 이 영화는 윤동주에 대한 이야기 인가, 우정에 대한 이야기인가 항일 독립 투쟁에 대한 이야기인가, 시에 대한 이야기 인가.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인가.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일 수 도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좌절 당한 꿈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좌절이 태어날 때부터 기본값으로 주어지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거나 아주 힘들었던 시대, 좌절이 좌절로 끝난 시인 윤동주의 삶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기억해야 한다면 그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담: 실제로 윤동주, 송몽규와 동향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 캐릭터가 영화에 잠시 등장하는데, 영화에 윤동주 시인이 정지용 시인을 만나는 장면에서 문익환 목사의 실제 아들인 배우 문성근이 정지용 역할로 나온다. 어떻게 보면 한 영화에 부자(父子)가 다 출연한 셈. 이 영화에서 시인 정지용의 등장은 아주 짧지만 상당히 임팩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