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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Dec 21. 2020

하늘 가까이

내 손안에 별을 넣을 수 있을 것만 같던 날들




여객기는 말 그대로 여행객을 수송하는 교통수단이다. 특히 시간대가 다른 국가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수송하니 목적지의 낮 시간에 도착하려면 한국에서는 밤 또는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승무원의 가장 큰 고충 중 하나. 머리만 닿으면 코 골고 이까지 갈며 잠드는 나에게도 시차 적응만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체 리듬이 일정하지 않으니 몸도 붓고 눈은 늘 토끼처럼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밤 비행을 나선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디로 가는 비행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남들은 모두 퇴근하는 저녁 시간이 나에게는 출근시간. 나의 출근길은 우리나라의 서쪽 중에서도 서쪽 인천공항으로 향하니 어스름한 해 질 녘 노을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을 터, 위안이 되었다.




밤 비행은 제 때 잘 수 없어 힘든 반면 승객들이 모두 잠드는 시간에 일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월한 면이 있다. 기내 조명을 모두 끄면 승객들은 하나둘씩 잠에 들고 승무원도 점프싯(승무원 좌석)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조명을 끄고 동료들과 번갈아 휴식에 들어갔다.




나는 손님들이 볼 수 없는 비행기 가장 꼬리 쪽 점프싯에 자리 잡았다. 손님들에게 보이지 않는 자리인 만큼 창문 덮개를 열어 하늘을 볼 수 있으리라. 지상에서 보는 하늘이 그냥 커피라면 하늘에서 보는 하늘은 TOP다. 밤하늘인데 볼게 뭐가 있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하늘에서 본 밤하늘은 별이 손에 닿을 듯 말 듯, 손 닿을 거리에 수 천 개의 별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장 아름다운 별 하나를 골라 손으로 만져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승무원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별들이 내는 빛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걸 모르고 살 뻔했을지도 모른다. 몇십 분을 넋 놓고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승무원은 하늘에서 일하는 직업이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나는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는 직업'으로 해석했다. 이름도 유명한 산맥들을 지날 때면 설산이 햇빛에 반사되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광경도 볼 수 있었고, 이 착륙할 때면 도시의 선과 면을 생김새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날씨가 궂은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건널 때면 여기서 사고 나면 그야말로 Cast Away구나 웃지 못할 상상을 한 적도 있다. 기장님의 초대로 조종실에서 착륙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대한 뭉게구름을 헤치고 마주한 광활한 활주로는 아직도 가슴속에 생생하다.




하늘에서 일하며 나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일하는 직업을 갖고 있구나 자부심을 가졌었다. 하늘은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고, 나도 그런 하늘을 닮고 싶었다.



 

가수 신승훈의 노래 중 '하늘 가까이'라는 노래가 있다. 내가 몸 담았던 항공사의 이미지 송. 승준생 시절엔 승무원이 된 나를 상상하며 가슴을 벅차게 했던 노래였고, 승무원으로 일할 때는 승객 탑승 시점 보딩 뮤직으로 종종 흘러나와 출발 전 '오늘 제대로 해보자!' 힘을 주었던 노래다. 이 글을 쓰며 하늘 가까이를 들으니 감정이 복잡 미묘하다. 아직도 수 천 개의 빛나는 별들을 가슴에 품고 있는 까닭이다.





저기 하늘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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