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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Apr 04. 2019

그대는 마이너스의 손

아무것도 못한다고 해라

 "실애야 네가 다 할 수 있어도 한 번도 안 해봤다고 아무것도 못한다고 해라."


 우리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해준 유일한 충고다. 아빠와 사시는 동안 벽에 못 박는 일이며 형광등을 갈거나 가전제품을 고치는 일 등은 모두 엄마 몫이었다. 맡기는 족족 시원찮게 일해 주시는 아빠 덕분에 엄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일을 다 해내셨다. 그렇게 30년 가까이를 사신 엄마는 시집가는 내게 절대 네가  다 할 수 있어도 못한다고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엄마를 쏙 빼닮은 나 또한 엄마처럼 그렇게 한평생을 살까 걱정이 되신 거다.


 '그래 난 연약한 여자야, 벽에 못 박는 일 같은 건 본 적도 없어.'


 물론 나는 신랑과 토목과 CC로 만났다. 그렇게 만난 토목과 후배인 내가 마냥 여리여리 여자여자하게는 보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신랑을 만나기 전까지 비실비실하던 나를 봐왔던 신랑이기에 이 주문이 먹힐 줄 알았다. 그리고 신혼 초까지 우리 신랑은 그렇게 믿었다.


 결혼을 하고 들어간 신혼집 화장실이 유독 어두웠다. 노란 전구가 들어있는 등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신랑과 함께 조명가게에 갔고, 조명가게 아저씨는 화장실에 설치할 수 있는 형광등을 추천하셨다. 설치도 아주 간단하다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기에 할 수 있다는 신랑의 믿음으로 집으로 가져왔다.

 의자를 놓고 원래 설치되어 있던 전구와 커버를 제거했다. 여기까진 순조로웠다. 다음은 나와있는 전선의 피복을 벗겨 심선이 나오면 새 형광등 커버의 구멍에 끼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신랑은 니퍼를 들고 전선을 조심스레 벗겨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피복만 벗겨져야 하는 전선을 계속 잘라냈다. 조금만 힘을 조절해서 다시 잘해보라는 나의 응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번이고 계속 잘라냈다. 결국 남은 전선은 화장실 천정에 난 구멍 속에만 남게 될 지경이었다.


 "나와봐, 내가 한번 해볼게"


 천장만 뚫어지게 쳐다보다 못한 나는 이렇게 말해버렸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으로 의자 위에 서는 것도 힘든 나지만 쳐다만 보고 있기에는 너무나 속이 타서 툭 속에 있는 말을 뱉어버렸다. 그리고 생각할 새도 없이 이미 나는 니퍼를 들고 전선을 자르고 있었다. 살짝 지퍼로 전선에 자국만 내고 손으로 쑥 잡아당기니 피복이 쏙 벗겨지고 반짝이는 구리선이 나타났다.

 

 "우와 잘한다. 진작 네가 하지"


 신랑의 감탄 어린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엄마가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라고 했는데...


 결혼 액자를 걸려고 못을 하나 밖을래도 못은 신랑의 망치를 자꾸 벗어났고 예쁘게 도배한 벽면에는 상처가 하나 둘 생겼다. 주말엔 14평 밖에 되지 않는 집을 청소한다고 신랑이 청소기를 돌리면 청소기의 헤드가 부러졌다. 신랑이 만지기만 하면 전자제품들이 망가졌다. 혹시 손에서 전기가 나와서 합선이라도 되는 것인가? 신랑과 나는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을 정도다.


 그렇게 10년을 살다 보니 신랑에게 힘을 빌려야 할 때나 큰 키를 이용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구는 내 손에 들려있게 되었다. 같이 사는 친정엄마는 사서 고생한다며 지금부터라도 신랑을 시키라고 말씀하신다. 계속해봐야 배운다고.


 얼마 전 신랑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안방 벽에 브래킷을 설치하고 TV를 달아주기로 했다. 신랑은 장인어른의 전동 드릴을 빌려 벽을 뚫기로 했다. 생각보다 꼼꼼한 신랑은 자와 수평계까지 동원해서 브래킷을 설치할 자리를 표시했고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그래 이번만큼은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자 하고 엄마와 장을 보러 나갔다. 그리고 돌아온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 두 개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전동 드릴과 부러진 나사못 만이 방바닥에 뒹굴었다.


벽에 딱 보이는 구멍 두 개



 옆에서 보면서 이래라저래라 말만 하신 우리 아빠와 무턱대고 벽을 향해 힘만 준 우리 신랑의 합작품이다. 결국 보다 못한 엄마와 나는 침대를 밀고 빈 책장 하나를 벽에 붙였다. 그리고 그 위에 TV를 얹었다. 콘센트를 책장 옆으로 빼고 TV와 노트북 그리고 핸드폰 충전기 등을 꽂았다.


TV를 놓아도 구멍은 보인다


 '아무것도 못한다고 해라'라고 말했던 우리 엄마와 그 충고를 지키지 못한 나는 이렇게 합작품을 만들었다. 


 가끔 설거지를 거들겠다고 나서는 신랑은 꼭 10년째 쓰고 있는 그릇은 두고 화사하고 깨끗한 그릇만 깬다.

 '혁아 나 그릇 사줄라고 깨는 거지? 그릇도 깨야 다시 사지' 

 새로 그릇 사는 걸 너무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가 하는 소리지만, 산지 얼마 안 되는 세트로 써야 이쁜 그릇의 이가 나가는 걸 보는 우리 엄마의 속은 아마 타고 있으리라.

 아들 둘과 친구같이 잘 놀아주는 우리 신랑이 너무 좋다. 하지만 1층이랍시고 집에서 축구하고 야구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부엉이 도자기와 우리 아빠가 공들여 만드신 박공예품이 깨질 때면 한숨이 푹푹 나온다. 


 건들기만 하면 고장 나고 부러지는 마이너스 손을 가진 우리 신랑이다. 하지만 항상 비실비실하던 나는 그를 만나고 어디 하나 아픈 곳 없이 건강해지고 튼튼해졌으니 그걸로 만족하며 산다. 앞으로 적어도 반 세월은 더 같이 살아야 할 텐데 계속 배울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하면서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인지, 원래 못하니깐 하면서 내 팔자를 나 스스로 볶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니 아들 셋 키운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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