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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Apr 11. 2019

남편의 철없음이 큰 힘이 되는 순간

당신은 공경하는 분

 2019년 2월 말, 퇴사를 결심한 나는 신랑과 함께 출근하는 마을버스 안에서 신랑에게 이야기했다.


 "나 오늘은 팀장님께 이야기하려고."


 "......"


 "그리고, 예비 여성창업자 모집이라고 국가에서 하는 지원 사업이 있는데, 여기에 지원해보려고. 그러면 오빠가 말한 사업구상이라던가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방향등을 좀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아. 이건 3월 8일까지 모집인데 경단녀에게는 가산점이 있데. 그래서 난 퇴사 D-Day를 3월 8일 이전으로 잡았어."


 예비 여성 창업자 모집 광고글을 신랑에게 내밀며, 혹시나 나의 퇴사 결심을 막으려는 시도조차 꺼내지 않도록 떠들어 댔다. 잠자코 듣고 있던 신랑이 말한다.


 "3월 8일, 너무 빠른데..."


 잉? 그럼 퇴사도 결정한 이 마당에 더 다닐 이유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더 길게 봐야 하는 거지? 한마디 더 거들려고 하는 순간 신랑이 말한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여태 11년을 회사에 받친 시간이나 세월을 생각하면..."


 이 순간에도 나는 나의 퇴사와 창업계획을 막으려는 어떤 변명 거리가 나올까 잔뜩 긴장하고 방패 거리가 없는지를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랑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 한 달 정도 유럽여행을 간다거나, 3개월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지금이 딱 적기인 거 같은데."


 엇? 내 예상이 빗나갔다. 여태 열심히 달렸으니 한 템포 쉬어가라는 신랑의 조언이었다. '만약 내가 퇴사를 한다면' 이라고 생각해 봤다고 한다. 그러면 11년 열심히 일한 보상으로 여행도 좀 다니며 쉬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나라면, 우리 신랑이 회사를 관둔다고 하면 바로 무엇을 할 거냐며, 우리가 한 달 생활비가 얼마인데 어떻게 아껴 써야 하며 언제까지는 취직을 하던 무엇이든 시작해서 이 정도의 수입은 있어야 한다고 닦달을 했을 거다. 이 조급함은 퇴사를 준비하는 나에게 마찬가지로 적용했다. 스스로에게 쉬면 안 된다고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잠깐 쉰다고 나태해져 버리면 영원히 나태하게 있을 것만 같아 나를 조금 더 강하게 쪼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런 철없는 신랑의 생각이 어쩜 그렇게 고맙게 느껴지던지.


 계획성 없고 느긋하고 게으른 내 신랑의 천성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할 때가 있다. 가끔은 그런 신랑을 보면서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나 꾹 참는다.


 "오빠, 오빠 회사에서도 그렇게 일해? 나 같음 성질나서 오빠 같은 사람하고 일 못해"


 그러나 이날은 이런 철없는 신랑의 생각이 어쩜 그렇게 고맙게 느껴지던지. 신랑의 생각 없어 보이는 큰 배포가 너무나 위대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신랑에게 퇴사 확인서를 받은 듯한 이야기를 팀장님께 했고, 계획했던 3월 8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퇴사를 했다. 그리고 바쁘게 돌아가려는 나에게 한 템포의 쉼표를 주고 있다.


 오늘 아침 신랑보다 늦게 일어나서 부스스한 머리로 눈을 비비는 나에게 샤워를 하고 나온 신랑은 갑자기 시상이 떠오른다며 한마디를 읊는다.


아침마다 들려오던

드라이 소리

윙~~~ 탁, 윙~~~ 탁

이제는 듣지 못하네...


 매일 아침 머리를 말리며 늦장을 부리는 신랑을 깨웠지만, 지금은 신랑만 씻고 신랑 혼자 출근한다. 조금은 천천히 가라던 우리 신랑님이 오늘은 너무 나태해진 나에게 너무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그래도 우리 신랑의 조언을 조금은 존중하기에 나는 오늘도 카페에 앉아 책도 보고 글도 쓴다.


 나에게 나태함의 소중함을 알려준 우리 신랑님을 나는 공경하는 분이라 부른다. 가끔은 철없는 우리 신랑의 표현을 난 너무 사랑하고 공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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