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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Apr 24. 2020

와이프의 자유시간을 위해

게임기가 준 자유

 겨울방학을 포함하여 코로나 19로 아이들과 24시간을 붙어있은지 4개월이 되어간다. 그동안 늘어난 것은 살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퍼붓는 잔소리 또한 목소리 데시벨 높이와 함께 늘어났다. 


 그간 아이들은 오늘의 할 일을 다 끝내면 한 시간의 게임시간이 주어졌다. 그것도 저녁 9시 이전에만 가능했다. 하지만 학교를 가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고, 오늘의 할 일은 아이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자유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그 시간을 아이들은 게임을 하며 보내길 원했다. 어느 정도 제약을 풀어주니 내 속이 갑갑해져 갔다. 두 아이가 게임기 앞에서 현란한 손가락 놀림을 하고 있노라면 한숨이 먼저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게임기의 컨트롤러가 고장 났다. 아싸! 나는 당장 게임기를 포장해서 AS센터에 택배로 보냈다. 컨트롤러만 보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본체까지 깔끔하게 싸서 보내버렸다. 나의 자유시간과 함께......


 사실 아이들이 엄마인 나의 도움이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시간은 딱 게임하는 그 두 시간이었다. 둘이 얼마나 사이좋게 노는지, 이제 1학년이 되는 작은놈도 형 옆에 바짝 붙어서 엄마의 '엄'자도 꺼내지 않는 그 시간. 나는 나의 잔머리로 게임기를 AS센터에 보내버리는 순간 나의 자유시간도 함께 보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온라인 강의를 듣는 내 등 뒤에는 항상 아이가 매미처럼 붙어있기 시작했다.


 "엄마 심심해, 심심해"


 "엄마 루미큐브 하자. 엄마~~"


 "엄마, 엄마"


  두 시간, 아니 단 삼십 분 만이라도 나의 시간이 필요했다. 정말 아이들과 함께 재택근무를 하는 일이 어렵다는 걸 직장을 관둔 지 1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아이들이 잠든 밤, 피곤한 눈으로 내 할 일을 할 수 있는 그 시간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갔어. 애들 게임하는 거 꼴 보기 싫어서 게임기를 AS 센터에 보냈더니, 내 자유시간이 사라졌어..."


 코로나 19가 시작됨과 동시에 우연히 남편은 대구로 발령이 났고 주말부부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발령과 동시에 재택근무가 시작되었고 대구에 있다는 이유로 한동안 집에도 오지 못했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그런 남편은 아이들과의 소통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매일 밤 영상통화를 했고 영상통화의 주제는 항상 게임이었다.


 남편은 대구에 내려감과 동시에 게임기를 대여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던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보다 더 앞서 레벨을 올리더니 왕을 죽이고 게임을 끝냈다. 집에 있을 때도 아이들을 이기기 위해 아이들이 잠든 밤 몰래 게임을 하곤 했다. 이게 다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니, 게임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나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이지만 아이들끼리만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주말, 남편이 왔다. 아이들과 잠시 나갔다 온 남편의 두 손에는 다른 종류의 게임기가 들려있었다. 급히 게임기를 TV에 연결해보더니 곧 게임 CD를 사러 다시 나갔다. 나의 넋두리를 들은 남편은 그간 관심을 두고 있던 게임기를 급하게 중고로 구입했다. 그건 순전히 '와이프의 자유시간'을 위해.


 "나갔다 와. 오늘은 내가 애들 볼게. 카페 가서 책도 읽고 어머니랑 데이트도 해."


 그 뒤로 아이들은 흔쾌히 주말이면 엄마의 자유시간을 허락했다. 아니 엄마 없는 자유시간을 아빠와 함께 만끽했다. 아빠가 만들어주는 맛없는 떡볶이도 엄마의 잔소리 없이는 꿀맛이었다. 물론 남편의 큰 배려(?) 덕분에 주중에도 나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AS 보낸 게임기는 3주가 지나서야 집에 왔다. 게임기가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새로 산 게임기를 소중히 포장해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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