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묵묵히 내 앞에 놓인 도가니탕 그릇에 소금을 넣어주었다. 도가니탕은 조금 짰다. 간은 그의 식성에 맞춰져 있었다. 남을 위해 준다는 것이 간혹 그렇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게 되어버리는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동기를 우선해서 받아들였다.
은희경,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중에서
소금을 넣어준다는 건 어쩌면 친절이다.
하지만 그 친절이 ‘당신도 내가 좋아하는 맛을 좋아해야 해’라는
은근한 통제일 수도 있다.
어떤 마음은 친절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준은, 정작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 일 때가 많다.
도와준다는 이유로 대신 결정해 주고,
배려한다는 이유로 입맛을 맞추게 한다.
그 사람은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심이 꼭 나에게도 편안한 방식은 아니었다.
되돌아보면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한 최선이 상대의 선택을 가로막은 순간들.
그게 좋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내 방식을 고집한 셈이었다.
그럴 땐 마음 한켠이 짠맛처럼 남는다.
작지만 오래가는 맛.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정.
나는 요즘, 상대를 위한 일이라는 말 앞에서 한 번 더 생각한다.
이게 정말 그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내 방식이 익숙해서 그럴 뿐인지.
짠 도가니탕을 먹은 적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마음을 몇 번쯤 씹어본 적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