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 사이

by 권성선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편견을 품게 되었다는 뜻일 터인데."

은희경의 소설 『타인에게 말걸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순간, 이미 그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하게 되고, 그 해석은 어쩔 수 없이 편견이라는 옷을 입는다. 선의든 악의든, 이해에는 필연적으로 ‘내가 보는 방식’이 개입된다.

나는 타인이 내 삶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는 것을 경계해왔다. 동시에, 내가 타인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하게 되는 일도 마찬가지로 불편했다. 도움을 주는 일이라 해도, 그 도움에 대한 상대의 기대와 해석, 그리고 그 뒤따라오는 감정의 부담은 나에게 늘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종종 무겁게 들렸다. 이해는 결국 나의 관점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일이니까. 그 결과, 그 사람이 나에게 기대를 품게 되고, 그 기대에 내가 반응해야 할 차례가 오면 나는 점점 지쳐간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곧잘 부탁을 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가 무던한 사람이라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소설이 끝날 즈음,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무던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쁜 남자’였다. 그래서였다. 부탁을 거절당해도 덜 상처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애초에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게 마음속으로 정리해두면, 기대도 덜 하고 상처도 줄어든다. 무례하거나 냉정한 말도, “그 사람답다”고 넘겨버릴 수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와 오해 사이를 오가며, 서로를 정리해간다. 누군가를 쉽게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이유는, 실은 덜 아프기 위한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그는 나쁜 사람이니까 나를 거절한 거지,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고.

우리 모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석하고, 때로는 오해하며 살아간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은 사실, "내가 너무 기대한 건 아닐까?"라는 되묻기일지도 모른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은 그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빠르게 인식하고, 그 다름을 판단하지 않은 채 머무는 일이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 단정짓기 전에, 나는 나 자신의 기대부터 점검해보려 한다.

혹시 내가, 그에게 편견이라는 이름의 이해를 들이밀고 있었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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