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기 서광에 반응하는 사람

by 권성선

나는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다.
사소한 말에 상처받고, 작은 변화에도 쉽게 흔들린다.
남들이 지나치는 말 한마디, 스치는 표정, 낯선 공간의 온도와 냄새까지도 전부 내 안으로 밀려들어와 마음을 잠기게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
‘예민한 사람’, ‘복잡한 사람’

그 예민함이 벅차고, 스스로가 너무 복잡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나를 감추고, 무디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권의 책이 그 오랜 오해를 풀어주었다.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책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감각과민증’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를 만났다.
지나치게 많은 걸 느끼는 건 병이 아니라 삶을 조금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일 수 있다는 말에 처음으로 안도했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내가 너무나 ‘살아 있는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감각과민증은 정신적 과잉활동이 우울증의 위기를 여러 차례 겪은 후에도 잠재적이지만 강력하게 삶의 기쁨을 간직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여러 번 무너졌지만 그만큼 자주 되살아났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햇살,
우연히 들은 노래 한 소절,
따뜻한 말 한마디,
오래 묵힌 편지 같은 책 한 권.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들에, 나는 자주 반응했다.

그건 나의 예민함 덕분이었다.
그 감각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
그 감각이 여전히 따뜻함에 반응한다는 것.
그게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예민함은 때로 삶을 힘들게 하지만,

그만큼 기쁨에도 더 깊이 반응하게 해 준다.
고요한 감정 속에서도 미세한 온기를 찾아내는 감각,
그게 나에게 있다는 게 이제는 든든하다.

나는 여전히 쉽게 무너지지만 그만큼 자주 되살아난다.
눈앞에 한 줄기 햇살이 비치면, 어느 날 우연히 마음에 닿는 문장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되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건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으므로 느끼고, 느끼기 때문에 다시 살아난다.

예민한 내가 미워졌던 날들.
그 모든 날들에 이 말을 건네고 싶다.
“네가 느끼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야.
다만 그 감각이 남들보다 조금 섬세할 뿐이야.”

그래서 나는 이제 내 감각을 감추지 않기로 했다.
세상의 빛에, 사랑에, 음악에, 언어에, 눈물에
반응하는 나를 숨기지 않기로.

한 줄기 서광에도 되살아날 수 있는 나는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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