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그녀는 무대 위에서 모든 걸 가졌다.
조명이 터질 때마다 수천 개의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첫 무대에서 마이크를 쥔 순간 온 세상이 멈춘 듯 조용해졌고, 그녀의 목소리가 홀 안을 가득 채웠다.
노래가 끝나면 함성이 폭발했다. 그 함성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녀가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사람들은 그녀를 ‘타고난 스타’라고 불렀다.
맑은 음색, 흔들리지 않는 박자, 웃을 때 살짝 패이는 보조개까지 그 모든 것이 팬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아침에는 라디오, 낮에는 음악방송 리허설, 밤엔 CF 촬영. 하루 스케줄은 빽빽했고 새벽에 끝나는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웃었다.
웃음은 곧 생존이었고 사람들의 사랑을 붙드는 유일한 밧줄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의 불빛이 영원히 켜져 있는 건 아니었다.
사건은 사소하게 시작됐다.
어느날 음악방송 녹화 도중에 의상 문제가 생겨 담당 스태프와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이 누군가의 휴대폰에 찍혔다.
그 영상은 의도적으로 편집되어 ‘스태프에게 고함을 지르는 성격 나쁜 아이돌’이라는 자막과 함께 온라인에 퍼졌다.
사실은 언성조차 높이지 않은 대화였지만 짧은 클립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곧 악성 댓글이 몰려왔다.
“원래 저랬대.”
“방송에서만 착한 척이야.”
며칠 후, 과거에 찍힌 사진들과 함께 ‘태도가 불친절했다’는 허위 목격담이 줄줄이 올라왔다.
소속사 매니저는 “조금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했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렀다.
광고 계약은 취소됐고 예능 출연 연락이 끊겼다.
다음 앨범 제작도 ‘내년으로 미루자’는 말과 함께 흐지부지됐다.
휴대폰은 독처럼 느껴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 켰다가 껐다.
꺼진 화면이 그나마 숨을 쉴 틈을 주었지만 켜는 순간 다시 가시밭길이었다.
소속사 계약이 끝났을 땐 그녀는 완전히 혼자가 돼 있었다.
팬들은 새로운 얼굴로 갈아탔고 매주 새로운 아이돌이 데뷔했다.
그녀의 이름은 기사 속에서만 ‘전 아이돌’, ‘전’이라는 접두어와 함께 등장했다.
그 ‘전(前)’이라는 한 글자가 그녀를 무대 밖 먼 곳으로 밀어냈다.
한동안은 발버둥을 쳤다.
유튜브 채널을 열어 라이브 방송도 하고 행사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 속에는 늘 ‘한물간 가수’라는 문장이 숨어 있었다.
조명은 그녀를 비추지 않았고 박수는 건성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자 세상은 점점 조용해졌다.
그녀는 새벽에 잠들고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났다.
거울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울기도 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맑았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방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던 그녀는 문득 어딘가로 가고 싶어졌다.
차갑지 않고 너무 시끄럽지도 않은 곳.
그렇게 걷다가 골목 끝에 어슴푸레 번진 간판 불빛을 봤다.
빗방울이 천막 위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두드리는 듯했다.
그녀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포차 특유의 온기가 얼굴을 감쌌다.
삶은 오징어와 파채의 고소한 냄새, 끓는 전골에서 올라오는 김이 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기둥에 걸린 낡은 시계가 똑딱거렸고, 구석 테이블에선 직장인 셋이 소주잔을 부딪히며 웃고 있었다.
한쪽에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가 흐느적거리듯 이어졌다.
그녀는 구석 자리에 앉아 모자를 벗었다.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손을 녹이기 위해 소주와 따뜻한 국물을 주문했다.
“비 많이 맞으셨네요.”
잔을 내려놓으며 고수가 말했다.
“네… 그냥 걷다 보니…”
그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첫 잔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열기가 잠시 심장을 데웠지만 곧 사라졌다.
젓가락으로 안주를 건드리며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봤다.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거야.’
그때 고수가 잔을 닦으며 아주 작게 흥얼거렸다.
“별이… 지면… 그대를…”
그녀의 손이 멈췄다.
“그 노래… 아세요?”
고수가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참 좋아했죠.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었었어요.”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그…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있네요.”
“잊기 힘든 노래죠.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곡이라.”
고수는 노래를 이어갔다.
“별이 지면, 새벽이 오고…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네.”
그녀는 조용히 잔을 비웠다.
잔을 내려놓으며 속으로 말했다.
‘나의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구나.’
고수는 접시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부드러운 마른 행주가 표면을 천천히 훑었다.
손길이 지나갈 때마다 뿌연 자국이 지워지고 매끈한 빛이 드러났다.
그녀는 그 동작을 바라보며 마음속 오래된 그늘이 조금씩 닦여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자신 안의 어두운 흔적이 조금씩 지워지는 것 같았다.
빗소리는 여전히 이어졌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오랜만에 작은 조명이 켜졌다.
그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오래된 별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