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영달, 예순둘.
한때는 잘나가던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동남아 시장을 오가며 무역을 했다. 방콕과 하노이를 오가며 호텔 라운지에서 바이어들과 웃고, 한 손에는 계약서, 다른 손에는 위스키 잔을 들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누구도 그가 무너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무너짐의 시작은 카지노였다.
"사장님, 한 번쯤 즐겨보셔야죠."
태국 바이어가 웃으며 그를 불빛 가득한 카지노 안으로 이끌었다.
삐걱거리는 슬롯머신, 붉은 융단 위로 굴러가는 주사위, 딜러의 매끈한 손놀림.
영달은 처음에는 그냥 구경만 하려 했다. 하지만 바이어가 건네준 칩을 들고 시도한 첫 게임에서그는 크게 땄다.
바이어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보셨죠? 사업도 운이고, 도박도 운이에요!"
그날 밤, 영달은 호텔 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칩이 눈앞에서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곧 인생의 빛처럼 보였다.
출장 때마다 들렀고, 시간이 지나자 주말마다 혼자 비행기를 탔다.
처음에는 소소한 돈으로 시작했지만, 이기는 판이 이어지자 그는 확신했다.
"사업도 도박도 결국은 감과 배짱이지."
그러나 잃는 순간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큰돈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도 '이번만 되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자금은 회사에서 흘러나갔고, 직원들 월급이 밀렸다.
거래처는 등을 돌렸고, 결국 은행 계좌는 압류됐다.
그는 부도를 맞았다.
집에서는 더 큰 무너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차갑게 말했다.
"당신, 이제는 남편도 아버지도 아니야."
이혼 도장이 찍히던 날, 영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끝내 그를 보지 않았다.
"아빠 같은 사람… 없는 게 나아."
그날부터 그는 집에도 세상에도 갈 곳이 없었다.
남은 건 빚뿐이었다.
지인이 안쓰럽다며 택시 한 대를 넘겨주었다.
"이걸로라도 먹고 살아. 손님 태우고 다니다 보면 다시 길이 보일 거야."
그는 핸들을 잡았다. 낮에는 사람들을 태우고, 밤에는 길모퉁이에서 라면을 먹으며 버텼다.
손님이 건네는 몇천 원짜리 지폐가 그의 하루를 이어줬다.
그러나 도박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칩이 손바닥에서 굴러가던 촉감, 딜러의 손짓, 사람들의 환호성.
그건 마약 같았다.
결국 그는 또다시 사북행 버스를 탔다.
처음에는 번 돈 조금만 걸었다.
그러나 도박은 늘 같았다. 돈을 조금 따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생각했고, 잃으면 '이번만 만회하면 된다'며 더 걸었다.
그 무한한 반복 속에서 마지막 남은 택시마저 담보로 넘어갔다.
오늘, 그는 마지막으로 그 서류에 도장을 찍고 돌아왔다.
"이제… 진짜 아무것도 없구나."
주머니에는 몇 장의 지폐와 동전만 남았다.
터미널 쪽으로 발길이 향했다.
밤마다 타던 사북행 버스, 그 익숙한 좌석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발길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마지막 한 판이면 진짜 끝이겠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다른 길로 돌아섰다.
골목 끝, 붉은 글씨가 번졌다.
'고수포차.'
천막을 젖히자 뜨끈한 김과 매운 국물 냄새가 안겼다.
낡은 라디오에서 옛 가요가 흘렀다.
영달은 구석자리에 털썩 앉았다.
"뭘로 드릴까요?"
고수가 다가와 물었다.
"소주… 한 병."
짧은 대답이 목구멍을 긁었다.
잔을 따르자, 그는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이 불처럼 타올랐다.
술이 절반쯤 비워졌을 때, 영달이 입을 열었다.
"나, 예전에는 잘나갔어. 동남아 다니며 사업했고, 호텔 로비에서 바이어들이 날 '미스터 영'이라 불렀지. 근데… 카지노에 발 들인 날, 다 끝났어. 회사도, 가족도. 이제는 마지막 남은 택시까지 팔아버렸네."
잔을 돌리던 그의 손이 떨렸다.
"그래도 웃긴 게 뭔지 아시오? 아직도 그 생각이 들어. '마지막 한 판'… 그거 한 번만 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고수는 잠시 영달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잔을 들어 술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잃을 걸 다 잃어본 사람만 아는 게 있어요."
영달이 고개를 들었다.
"뭘… 말이요?"
"마지막 한 판? 그건 절대 사람을 살려주지 않아요. 다 잃었다고 생각할 때… 남는 게 있어요. 그게 사람이든, 삶이든.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살아요."
잠시 말이 끊겼다.
밖에서는 천막 위로 빗방울이 굵게 떨어졌다.
영달은 잔을 쥔 채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세척대 쪽에서 고수의 손길이 이어졌다.
깨끗이 씻은 그릇을 마른 행주로 천천히 닦아냈다.
묵은 자국이 사라질수록 표면이 흰빛을 되찾았다.
영달은 그 손길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도… 닦일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잔을 비우고도 그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버스가 떠나는 소리가 났다.
그 버스에 오르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그가 돌아갈 길이 아직 남아 있는지, 아니면 이미 끝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천막 안에서 흘러나오는 김과 빗소리 사이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