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은 서른둘에 첫 발령을 받아 교단에 섰다.
칠판 앞에서 분필을 쥐었을 때 아이들 눈망울이 반짝이던 장면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90년대 교실은 소박했지만 따뜻했다. 스승의 날이면 종이에 빼뚤빼뚤 쓴 편지를 들고 와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고 말하던 아이들. 하굣길에 우르르 몰려와 "선생님, 다음 시간에 축구해요!"라고 외치던 목소리들.
어느 해 봄날엔 손녀딸 잘 부탁한다며 직접 캔 쑥으로 떡을 빚어오신 할머니도 있었다. 그는 그 쑥떡을 교무실에 나눠 먹으며 '이 일이 참 보람 있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되뇌곤 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스마트폰이 교실 안으로 들어온 이후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훈육이라도 하려 들면 학생들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찍어서 올려버린다'는 협박이 농담처럼 오갔고, 교사의 권위는 손바닥만큼 작아졌다.
민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교무실 문을 두드렸다. 심지어 밤늦게 개인 톡으로 항의 문자가 오기도 했다.
"우리 아이가 상처 받았다는데, 책임질 수 있으세요?"
그 메시지를 보고 있으면 김 선생은 분필 가루가 묻던 옛날 손끝이 그리워졌다. 아이들과 마음을 주고받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결국 정년퇴임 날, 교장실에서 금빛 액자에 담긴 공로패를 받으며 그는 묘한 공허함을 느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꽃다발이 쌓였지만, 그 뒤에는 더 이상 서 있을 칠판도, 앉을 교무실 책상도 없었다.
퇴직 후 한동안 그는 매일 아침 거리를 산책했다. 카페에서 신문을 읽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겉으로 보기엔 여유로운 노년이었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늘 비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
그 생각이 문득문득 목을 조여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문화센터 게시판에서 '아마추어 극단 단원 모집' 공지를 보았다.
"은퇴자, 주부, 직장인 누구나 가능. 연극을 함께 만들어갈 분 환영합니다."
종이에 적힌 '누구나'라는 두 글자가 그를 잡아끌었다. 그는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저... 나이가 좀 있는데, 괜찮을까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쾌활했다.
"연극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오셔서 같이 연습해 보시죠."
그날 이후 그의 저녁은 달라졌다.
처음 극단 연습실에 들어섰을 땐 솔직히 위축됐다. 20대 대학생 단원들도 있었고, 30~40대 직장인들도 있었다. 테이블에는 대본이 흩어져 있고, 바닥에는 낡은 무대 소품이 널려 있었다.
그는 무심코 말했다.
"제가 제일 나이가 많겠군요."
그러자 한 단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대신 가장 많은 이야기를 갖고 계시잖아요."
연습은 쉽지 않았다. 대사를 외우다 막히면 연출이 지적했고, 목소리가 작으면 다시 크게 내야 했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세요. 감정을 끝까지 밀어내야 합니다."
스무 살 연출의 지적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묘하게 모멸감 대신 활력이 솟았다. 수십 년 동안 가르치던 자리에 있던 그가 이제는 배우는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아직도 배울 수 있구나.'
그 사실 하나가 그를 다시 살아 있게 했다.
몇 달의 연습 끝에 드디어 첫 공연 날이 다가왔다. 작은 소극장이었지만 객석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막이 오르고 조명이 쏟아지는 순간, 그의 가슴은 터질 듯 뛰었다.
분장 거울 속엔 교단의 정장 대신 수수한 무대의상을 입은 자신이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 수업 시작할 때랑 똑같네...'
그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막이 오르고 관객들의 시선이 몰려왔다. 대사를 놓칠까, 발을 헛디딜까 두려웠다. 하지만 입을 여는 순간 떨림은 사라졌다. 대사가 흐르고 몸짓이 이어졌다. 극장 안이 숨죽였고, 그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관객들이 박수칠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겹쳐지듯 관객의 박수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그가 교단에서 마지막으로 느낀 박수보다 훨씬 깊은 울림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그는 홀로 극장을 나왔다. 뿌듯함과 허전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가슴이 북받쳐 술이 필요했다.
그는 발길을 '고수포차'로 돌렸다.
천막 안은 따뜻했고 김이 자욱했다. 좁은 공간에선 전이 지글거리는 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가요, 그리고 빗방울이 천막을 두드리는 소리가 겹쳐졌다.
고수가 눈을 들어 그를 보더니 미소 지었다.
"오늘은 얼굴이 환하시네요. 좋은 일 있으셨죠?"
김 선생은 자리에 앉아 술잔을 들며 웃었다.
"오늘 제 인생 첫 연극 무대에 섰습니다. 교단에선 늘 가르치기만 했는데, 오늘은 제가 배우가 된 기분이었어요. 관객 박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립니다."
고수는 소주를 따라주며 잔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첫 무대라...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많이 떨렸습니다. 대사 한 줄이라도 잊을까 봐 손이 덜덜 떨리더군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까... 서른 해 전 처음 교단에 섰을 때랑 비슷했어요. 아이들이 쳐다보던 눈빛처럼 오늘 관객들도 저를 똑바로 보더군요."
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배우나 교사나 결국 사람 앞에 서는 일이니까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오늘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배우는 자리였다는 거죠."
김 선생은 젓가락을 잠시 내려놓았다.
"...맞습니다. 교실에선 늘 알려주고 인도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연습하며 깨달았어요. 아직도 내가 배울 수 있고, 아직도 틀릴 수 있고, 그걸 웃으며 다시 시도할 수 있구나."
고수는 빈 그릇을 가져가 천천히 행주로 닦았다. 그릇 표면이 빛을 되찾듯 그의 목소리도 담담했다.
"은퇴는 끝이 아니죠. 저도 잃을 걸 다 잃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다시 시작할 길이 보이는 법이에요."
김 선생은 술잔을 기울였다. 목구멍이 뜨겁게 데워졌다.
"새로운 시작이라... 나이 핑계로 겁내던 걸 이제 그만두어야겠습니다."
고수는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배움은 나이를 안 가리죠. 오늘 받은 박수처럼 오래 가는 건 젊음이 아니라 마음가짐이에요."
포차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는 술잔을 바라보다 조용히 미소 지었다. 교단에서 내려왔지만 무대 위에서 다시 배우가 된 자신처럼 앞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고수는 말없이 빈 그릇을 가져갔다.
행주에 힘을 주지 않고 천천히, 둥글게 돌리며 표면을 훑었다. 오래 묵은 자국이 하나씩 지워지고, 그릇은 다시 흰빛을 되찾아갔다.
김 선생은 그 모습을 눈길로 따라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닦여서 다시 쓰이는구나... 나도 아직 쓸 수 있는 사람이겠지.'
고수는 그릇을 탁,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으며 웃었다.
"깨끗해졌네요. 다시 쓰이면 되죠. 사람도 그릇이랑 다르지 않아요."
김 선생은 순간 가슴이 저릿해졌다. 술잔을 천천히 기울이며 오늘의 무대와 관객의 박수, 그리고 교단 시절 아이들 얼굴이 한꺼번에 스쳐갔다.
밖에서는 빗소리가 천막을 두드리며 깊어졌다.
그는 마치 새로 닦여 빛을 찾은 그릇처럼 자신 안에서도 잊고 있던 빛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