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를 위해 산다

by 권성선

남편은 캠벨포도를 좋아한다.

껍질을 살짝 깨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향과 시큼 달큼한 맛, 그 맛이 남편의 입맛에 딱 맞는다.


아이들은 청포도를 좋아한다.

씨가 없고 톡톡 씹히는 달콤함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편하고 익숙하다.


그리고 나는 머루포도를 좋아한다.

잘 익은 알갱이마다 담긴 진하고 묘한 단맛, 투박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깊은 향. 하지만 장을 볼 때면 내 장바구니에 담기는 건 언제나 캠벨포도와 청포도다. 남편과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고른 선택이다. 머루포도 앞에서 잠시 멈칫하다가도 결국 나는 가족들의 기호를 더 앞세운다.


복숭아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아이들은 아삭하게 씹히는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단연 물렁한 복숭아다. 껍질만 벗겨도 과즙이 흘러내리고, 혀끝을 감싸는 부드러운 단맛은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데 늘 사는 건 딱복뿐이었다. 누군가의 입맛을 먼저 떠올리다 보니, 내 취향은 늘 뒷전이었다. 포도 앞에서도, 복숭아 앞에서도 나는 늘 같은 선택을 반복했다.

그러던 오늘 장바구니 앞에서 문득 멈춰 섰다.

“이번엔 나를 위해 사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오늘은 딱딱한 복숭아와 함께 물렁한 복숭아도 집어 들었다.

집에 와서 복숭아를 먹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주 작은 선택이지만 그 속에는 나를 위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


나는 오늘도 가족을 위해 장을 보지만, 그 사이에 나를 위한 작은 자리를 마련했다.

포도 진열대 앞에서도, 복숭아 앞에서도, 언젠가는 조금 더 당당히 내 손길을 뻗어도 괜찮겠지.


오늘 내 장바구니에는 가족의 기호와 함께, 오랜만에 내 취향도 담겨 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달콤하게 물들어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의 떡, 내 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