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텅 빈 가게지만, 예전엔 웃음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주방에서는 기름이 지글거리며 튀었고, 종업원들은 접시를 들고 바삐 오갔다. “사장님, 여기요!” 손님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 활기 속에서 그는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거리두기로 테이블을 줄여야 했다. 어느 새 단골조차 발길을 끊었다. 가게 안은 썰렁해졌고 매출은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설상가상으로 재료값까지 치솟았다. 밀가루와 식용유, 돼지고기 값이 배로 뛰자 거래처 대금을 버티고 버티다 결국은 내지 못하게 되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래처 사장은 처음엔 이해한다고 했지만, 세 번째 약속을 어기자 더는 말을 섞지 않았다. 재료가 끊기자 음식 맛은 점점 들쭉날쭉해졌다. 종업원들도 하나둘 떠났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저도 생계가 있어서요…” 남아 있는 건 단 두 사람뿐이었다.
문제는 이들마저 6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는 밤마다 장부를 붙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직원들 월급을 먼저 해결하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동네 뒷골목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간판에 “급전 가능”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코끝을 찌르는 싸한 담배 냄새가 먼저 몰려왔다. 창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은 좁은 사무실 안의 희뿌연 연기가 천천히 떠다니고 있었다. 낡은 소파는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구석에는 언제 비운 건지 모를 커피 캔이 쌓여 있었다.
그가 문을 닫자 방 안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무겁게 박혔다. 오래 앉아 있던 듯이 의자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손가락 사이로 반쯤 꺼져가는 담배가 매달려 있었다.
“얼마 필요하십니까?”
짧은 한마디가 방 안에 가볍게 울렸지만 그의 귀에는 묵직한 쇳덩이처럼 떨어졌다. 순간 공기가 더 탁해지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절망에 떠밀리듯 적은 금액을 불렀다. 남자는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았다. 도장 몇 번 찍고 서류에 서명하자 돈은 바로 그의 손에 쥐어졌다.
가게로 돌아오는 길, 그는 땀이 식기도 전에 그 돈으로 밀린 재료 대금을 일부 갚고 직원들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직원들은 봉투를 받아 들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짧은 한마디와 함께 어색하게 지은 미소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놓였다. 오랫동안 짓눌리던 돌덩이가 한 줌쯤 덜어진 듯 어깨가 잠시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돈이 결코 자신의 힘으로 마련된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섯 달이나 밀린 월급을 겨우 건넸지만, 그 봉투 속 지폐는 뒷골목 사무실에서 가져온 차갑고 무거운 돈이었다. 은행 창구가 아니라 창문조차 제대로 닫히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건네받은 돈이었다. 친절한 듯 웃던 사채업자의 얼굴은 눈앞에 아른거렸고 “곧 갚으실 수 있죠?” 하고 무심히 던지던 목소리는 귓가에 맴돌았다.
직원들이 떠난 뒤 그는 홀에 홀로 남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환하게 웃으며 봉투를 받아 들던 얼굴들이 눈앞에 겹쳐졌다. 위로 같으면서도 마음 한쪽을 찌르는 칼날 같았다. 그들의 웃음은 고마움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더 깊은 수렁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일깨웠다.
밤이 깊었다. 가게 불을 끄고 길로 나섰지만 발걸음은 좀처럼 집을 향하지 못했다. 손에 쥔 지폐 몇 장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주머니 속에서 그것이 땀에 젖어 눅눅해지는 것만 같았다. 집에 가면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환한 얼굴로 맞이할 그 순간을 떠올리자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았다. 동시에 어디론가 숨어야 할 것 같았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니 허름한 천막 아래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펄럭이는 작은 포장마차, 달랑 몇 개의 의자, 그리고 혼자 분주히 국물을 끓이고 술잔을 닦는 주인 고수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결국 천막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서 오세요.”
고수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는 무겁게 자리에 앉아 소주 한 병과 국물을 주문했다. 잠시 뒤, 하얀 김을 내뿜는 탕이 놓이고 소주병이 뚝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내려졌다.
첫 잔을 들이킨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어요. 직원들 월급 주려고요. 그 아이들이 나 때문에 반년이나 못 받았는데, 이제야….”
말을 멈추자 술잔이 덜컥 손에서 내려앉았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살려고 빌린 건데, 이게 또 다른 올가미가 아닐까 겁이 나네요.”
고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말없이 국물 그릇을 그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드시죠. 속이라도 좀 풀어야지요.”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그는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잘한 걸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서 직원들 챙긴 게 맞는 건지, 그냥 수렁에 더 깊이 빠진 건지… 요즘은 아무런 확신이 없네요.”
고수는 술잔을 채워주며 조용히 말했다.
“사장님, 누구보다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들 챙기셨잖아요. 그거면 된 거죠.”
고수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단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잔을 꼭 쥐었다.
“근데…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너무 두렵네요.”
사장은 잔을 만지작거리다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이렇게 넘겼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겁이 나요”
고수는 술을 따라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요. 두렵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죠. 근데 오늘은 괜히 자신만 자책하지 마세요. 직원들 먼저 챙긴 거, 그거면 충분하죠. 내일 일은 내일 가서 막으면 되요.”
그는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눈물이 뜨겁게 흘러내렸지만 닦지 않았다. 천막 안, 희미한 불빛 아래서 그는 처음으로 느꼈다.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라는 걸.
천막 밖 바람이 불빛을 흔들고, 고수가 묵묵히 그릇을 닦고 있었다. 그 잔잔한 소리와 흔들리는 빛이 어쩐지 그를 잠시 버티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