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수가 강력계 형사로 살아온 스무 해는 남들이 보기에 모범적인 모습이었다. 승진도 적당히 했고 사건 해결률도 나쁘지 않았다. 동료들에게는 성실한 형사, 가족들에게는 든든한 가장이었다. 겉으로는 안정된 삶이었지만, 박창수 자신만은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실체가 아니라 허상이라는 것을.
첫 사건에서부터 그랬다. 신참 형사 시절, 골목길에서 발생한 폭행사건이었다. 박창수는 술에 취한 중년 남성을 범인으로 단정했다. 피해자 진술과 목격자 증언이 일치하는 것 같았고 용의자도 범행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 뒤 진범이 따로 나타났다. 실제 범인은 피해자의 전 직장 동료였고 그 취객은 단지 우연히 현장을 지나다가 쓰러진 피해자를 발견한 것뿐이었다.
그다음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 강도사건에서 그는 CCTV 영상 속 인물의 체형과 걸음걸이를 분석하며 자신만만하게 용의자를 특정했다. 하지만 그 용의자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결국 진범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잡혔다. 또 다른 편의점에서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르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이었다.
이렇게 그의 추리는 늘 빗나갔고, 직감은 엉성했다. 단서들은 그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동료들이 놓치지 않는 미세한 흔적들, 증언 속 숨겨진 모순들, 용의자의 표정 변화까지도 그에게는 그저 평범해 보였다. 사건은 결국 해결되었지만, 그것은 그의 공이 아니었다. 다른 동료들의 끈질긴 수사, 용의자의 우연한 자백, 시간이 드러낸 진실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매번 수사팀의 일원으로서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 순간마다 제복은 자신을 감싸며 그럴듯한 얼굴을 만들어주었다. 언론 앞에서, 피해자 가족 앞에서, 상사 앞에서 그는 당당한 형사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그것이 단단한 얼굴이 아니라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무능함을 알고 살아가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매일 아침 경찰서로 향하는 길에서 그는 자신이 가짜처럼 느껴졌다. 겉으로는 강력계 형사지만 속으로는 빈 껍데기를 걸치고 있는 사람 같았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들은 그의 제복을 보며 안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 신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만이 알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을 자랑스러워했다. 동네 아주머니들 앞에서 "우리 남편은 강력계 형사"라고 말할 때의 자부심이 얼굴에 역력했다. 아이들은 아빠를 영웅이라 여겼다. 학교에서 아빠 직업을 소개할 때마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눈빛을 받을 때마다 그는 부끄러웠다. 자랑으로 포장된 말들이 사실은 허상을 칭송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회의에서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자신의 추리가 또 빗나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선배나 동료들의 지시에 따랐다.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다른 이의 결정을 따르는 편이 안전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고, 서류를 꼼꼼히 정리하고, 증거물을 잃어버리지 않게 관리하는 일 정도였다.
그 일들은 추리와 직감이 필요 없었기에 그나마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피해자 가족들과 대화할 때는 진심으로 그들의 아픔에 공감했고, 서류 정리는 누구보다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했다. 증거물 관리도 한 번의 실수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형사의 핵심 업무가 아니었다. 보조적인 역할일 뿐이었다.
동료들은 그런 그를 성실한 형사라고 평가했다. "창수는 믿을 만해. 맡은 일은 확실히 해내거든."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박창수에게 사건의 핵심을 맡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는 언제나 보조 역할이었고 그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스무 해가 흘렀다. 허상 위에 하루하루를 쌓으며 그는 버텨왔다. 때로는 자신이 형사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고, 다른 일을 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 버텼다. 허상이라도 그것이 자신이 가진 전부였으니까.
정년퇴직을 앞둔 마지막 주 금요일 밤. 동료들이 마련해 준 송별회가 끝났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형사셨어요"라는 인사말들이 그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그 말들이 진심인지 예의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스무 해의 형사 생활이 공식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멈춰 섰다. '고수포차'라는 작은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오늘만큼은 혼자 있고 싶었다. 집에 가면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퇴직을 축하하는 말들을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들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포차 안은 아늑했다. 구석 자리에 앉은 그에게 고수가 말을 건넸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그의 얼굴에는 살아온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표정이 무겁네요."
"오늘... 퇴직했습니다. 스무 해 동안 형사였어요."
"그럼 축하할 날이네요. 고생 많으셨겠어요."
축하라는 말에 그는 고개를 숙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형편없는 형사였습니다."
고수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소주 한 병과 간단한 안주를 준비해 주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스무 해 동안 하셨다면 분명히 잘하셨을 거예요."
"아니에요. 정말 형편없었어요. 제가 잡은 범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제대로 추리한 사건도 없고요."
그 고백은 밤새 이어졌다. 범인을 잡지 못했던 무력감, 동료들 앞에서 느꼈던 부끄러움, 허상에 기대어 살아온 죄책감, 그리고 그럼에도 출근을 멈추지 못했던 날들에 대해. 고수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중간중간 새로운 안주를 내어주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그런데도 전 계속했습니다. 왜였을까요? 무능한 걸 알면서도 왜 그만두지 못했을까요?"
그의 물음에 고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허상만 있었던 건 아닐 겁니다. 형사라는 게 범인을 잡는 것만이 아니죠. 피해자를 위로하고, 기록을 남기고, 질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런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런 일들이 있어야 큰 일들도 가능해지는 거고요."
그 말을 듣자, 그는 지난 세월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피해자 가족이 눈물로 고마움을 전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형사님 덕분에 견딜 수 있었어요"라고 말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꼼꼼한 기록 덕에 재판이 매끄럽게 진행된 적도 있었다. 판사가 "수사 기록이 정확해서 재판 진행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라고 말했던 기억도 있었다.
후배들이 작은 조언에 의지하던 기억도 남아 있었다. "선배님, 피해자 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물어오는 후배들에게 그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주었다. "일단 진심으로 들어주는 거야. 성급하게 위로하려 하지 말고." 그런 조언들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허상이라고만 여겼던 삶 속에도, 누군가에게 닿은 진실이 있었다. 그것들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
"그럼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걸까요?"
그의 물음에 고수는 미소 지었다.
"그렇죠. 모두가 주인공일 필요는 없어요. 조연이 있어야 이야기가 굴러가죠. 그리고 때로는 조연이 더 중요할 때도 있고요."
시계는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 위에 오래 얹혀 있던 무게가 조금은 내려간 듯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무게의 의미가 달라진 것 같았다.
계산을 하며 그는 물었다.
"사장님, 성함이..."
"고수입니다."
"저는 박창수입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아요."
"언제든 오세요. 퇴직하시면 시간 많으실 텐데, 가끔 들러서 이야기나 나누어요."
포차 문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묵직했지만,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허상이라 여겼던 지난 스무 해가 이제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남았다. 완전한 성취는 아니었지만, 완전한 실패도 아니었다. 그 중간 어디쯤에 자신의 삶이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수는 생각했다. 세상은 언제나 화려한 성과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곁에서 묵묵히 서 있는 힘, 그 힘이 있어야 삶이 버텨진다. 박창수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강력계가 굴러갔고,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새벽바람이 포차 간판을 흔들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내일은 또 다른 사연이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허상 속에서 진실을 건져내며, 고수의 밤도 천천히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