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사랑하게 된 이유

by 권성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추녀였다.
못난 여자가 아니라 가을만 되면 심하게 타는 여자.
여자들은 봄을 타고, 남자들은 가을을 탄다지만
나는 유독 가을에 약했다.

가을이 오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묵직한 쓸쓸함이 올라왔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그건 외로움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어디선가 ‘인간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감정’이라는 표현을 본 적 있는데 그게 딱 내 이야기였다.

그런 내가 변했다.
몇 해 전부터 가을이 오면 미치도록 설렌다.
노랗게 익은 햇살이 좋고, 붉게 물든 나뭇잎이 좋고,
서늘한 바람이 살결을 스칠 때마다 살아있다는 게 고맙다.

나는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건 아마도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가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 계절이 가진 찬란함과 쓸쓸함,
빛남과 사라짐, 시작과 끝의 모든 결을
있는 그대로 껴안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람도, 계절도, 삶도 결국은 같은 원리를 따른다는 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자리에 남는 건 허무가 아니라 깊은 온기라는 걸.

그래서 나는 이제 가을이 두렵지 않다.
떨어지는 낙엽도, 짧아지는 햇살도,
모두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안에 ‘나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곡에 머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