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夜)

힐링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밤(夜)

민병식


여름이면 밤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떠야할 것같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야 할것 같은 정형화된 밤이 아닌 무채색의 그저 그런 밤이다. 가끔은 내가 기대하지 않는 밤이어도 새벽이 오려면 어떤식으로든 존재해야하기에 마음에 와닿지 않는 현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의 밤이 내는 소리가 고음인지 저음인지 줄 끊어진 현악기의 불균형한 울림인지는 분명치 않다. 비가 오려는 지 후덥지근하니 쉽사리 잠은 오지 않고 건너편 아파트의 꺼지지 않은 불빛이 괜시리 거슬리는 밤, 아마 내일이면 또다시 페르소나(persona)의 가면을 쓰고 출근을 해야하는 일요일 밤의 아쉬움과 월요일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짧은 고뇌의 순간이 교차하면서 이리도 밤을 뒤척이게 하는 것 아닌지 싶다.


밤을 즐기는 것은 여유의 시간을 즐기는 것인데 평일은 잠자기 바쁘니 쉽지 않고 시간에 쫒기지 않는 금요일 밤이 좋다. 나만의 왕국이 열리는 금요일 늦은 밤에 혹시 식구들이 깨지 않을까 숨을 죽이며 살금 살금 주방으로 나가 커피 물을 끓인다. 커피를 타고 설탕을 듬뿍 넣고 거실 쇼파로 돌아와 '후르릅 후릅' 목구멍을 자극하는 달콤 쌉싸르르한 뜨거운 감촉을 아주 천천히 즐기며, 이름 모를 시인의 시 한 편을 만나기도 하고, 평소 보고 싶었던 책의 주인공들과 조우하기도 한다. 마이클 콕스의 무서운 밤, 고흐의 카페 테라스가 있는 노오란 밤,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새벽, 밤을 건너는 일은 또다른 사색을 창조하기도 하고 사방으로 동동 뛰어다니는 생각을 일렬로 정렬시키기도 한다.


때로 밤은 세상을 향해 날카롭게 날이 선 나의 모습 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말을 건넨다. 무엇이 힘들었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무엇이 오늘을 아프게했는지 보이지 않은 손길로 토닥거리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지친 가슴에 위로를 건넨다.


"틀린 것을 목소리 높이며 말했던지 옳은 것을 말 못하고 담아 두었던지"


나는 밤의 들판에서 초원을 마음껏 휘젓는 목동이 되기도하고 문득문득 마음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삶의 부유물 들을 하소연으로 내뱉기도 하는데 밤은 그 모든 것 들을 조용히 작은 진동 하나 없이 침묵으로 감싼다. 늘 그렇다. 밤은 불면의 세상을 외롭지 않게 해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서류더미도 없고 인간관계의 헝클어진 실타래도 없는 지극히 부담없는 질문이 공기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시간, 긴장을 풀고 밤에 빠져든다. 잠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달콤한 중독의 시간이 행복하다. 커피 물 끓는 소리가 마치 갑자기 내린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은 혼자만의 밤을 사랑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정의를 칼로 무른 베듯 바로 내릴 수는 없을뿐더러 모두가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소박한 그 무엇과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때는 몰랐지 만 되돌아보면 행복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한 주의 반쯤 왔으니 또 평안의 금요일이 찾아 올것이고 이번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웃고 있을 별 총총 하늘을 만나러 함 떠나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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