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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Nov 15. 2023

어머니의 무쇠솥

초고령화 시대 에세이 6

[초고령화 시대 에세이] 어머니의 무쇠솥

민병식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내 고향, 경기도 연천읍은 어렸을때부더 이촌향도 현상이 진행되어 지금은 농토가 확 줄어들었고 도시화가 진행되었지만 변변한 건물이라고는 관공서 밖에 없고 공장이나 회사 등 인구유입의 원인이 없어서 요즘의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말만 읍이지 인구소멸 지역이다. 지금은 전철공사가 한창인데 이제 전철1호선이 이제 고향까지 가는거다. 경원선의 간이역인  연천역에서 한 50m떨어진 곳에 우리 집이 위치해 있었다. 고향은 내게있어 서울로 유학을 오기까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 나의 정서를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였던 곳이다.


아버지께서는 거의 15년전까지 고향 집에서 사셨고 허리수술을 하시고는 혼자만의 생활이 버거우시다고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로 이사 오셨다  그동안 고향 집은 빈 집으로 남아 있었고 일년에 두번 정도 가서 둘러보곤 하였다.

몇년 전의 휴일 낮의 일이다.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고향 집 팔았다. 사람이 안사니 흉가가 되어 가고 매년 가서 관리하기도 이젠 힘드니 그렇게 알아라''


고향집은 전철이 들어온다고하자 매수자가 금방

나타났다고 한다. 갑자기 마음에 서운함이 밀려온다. 내게 물려주시기로 한 집을 상의도 없이 파시다니, 갑자기 멍해져 쇼파에 쓰러지듯 눕는다. 사실, 고향집은 내 것도 아니고 부모님 재산이기에 나에겐 권한이 없다. 물론, 부모님께서 물려주실 재산이 욕심이 난 것도 아니다. 내가 놀란 이유는 고향의 집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고, 나의 어린시절의 추억과 소중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보물 상자였는데 이젠 그 장소가 남의 것이 된다는 상실감 때문이다. 사실 아버지는 내게 고향집을 물려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어머니를 시켜 전화를 한 것이리라. 판매 대금은 부모님의 노후 자금으로 쓰일 것이니 내가 뭐라고 항의할 주제도 되지 않는것은 맞다.


올해 부모님을 모시고 찾은 고향의 집은 새로운 주인이 집을 다 허물어서 어린시절 내가 지내던 방은 물론이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콩나물공장과 돼지 우리 등이 형체도 없이 모두 없어지고 그 자리는 텅텅 빈 공터가 되어 있었다. 옛 추억을 회상하며 한참을 서서 바라보던 중 빈 공터 끝에 녹슬고 구멍난 무쇠솥 하나가 보인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돼지를 꽤나 많이 키웠는데 어머니께서는 비싼 사료값을 절약하기위해 아침 저녁으로 손수 리어커를 끌고 다니면서 중국음식점, 여관 등을 다니며 일일이 쌀 뜬물을 걷고, 남은 잔반을 수거하여 그것들을 무쇠솥에 푹 끓여 돼지들에게 먹였다. 아마 그 때 잔반을 끓일때 사용했던 그때의 그 무쇠솥이리라. 날씨가 실외

생활을 하기에 적당한 봄이나 가을에도 매우 고된 일이었을텐데,  삽십도를 넘는 뜨거운 여름 무더위나, 추위가 혹독하기로 유명한 휴전선 근처 경기 북부지방의 한 겨울에 돼지의 먹거리를 구하러 다니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집에서 키우던 돼지들은 어머니의 삶에서 자식에게 줄수있는 희망 덩어리였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였다. 아기돼지 때부터 성장하여 어미돼지가 될 때 까지, 아침부터 그 다음날 닭이 홰를 치는 시간이 되도록  먹이를 주고 더우면 더운대로 잘못될까, 추우면 추운대로 얼어죽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시던 어머니의 돼지 사랑은 수 년간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몇 시간 잠도 자지 못하고 끊임없는 육체 노동에 몸을 혹사하셨다.  자식들 잘 키워보겠다는 어머니의 희생은 끝이 없었고 나와 내 동생은 그런 어머니의 피와 살을 먹고 살았다.


나도 이제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세월을 뒤따르고 있다. 어머니의 희생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내리 사랑 이라는 말이 있듯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라는 책임감과 합해져 어떤 수고로움과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치열하고 험란한 사회에 섞여 살아가야 하는 아이 들 걱정하는 부모가 되어보니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것 같다. 지금도 자신의 건강 보다는 매일 아들 걱정을 하며 밥은 잘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노심초사 하시는 노모를 보면 나도 내 자녀 들에게 얼마만큼의 사랑이 되어줘야 하는지를 가늠해 보게 된다.


깊어가는 밤 허전한 기온이 몸을 감싼다. 밤늦도록 잠은 오지않고 노란 전구가 비추는 식탁에 앉아  옛날을 추억한다. 밤늦께 돼지가 새끼를 낳는다고 냄새나는 돼지우리 안  백열전구 아래서  새벽이 깊도록 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 너무 고생하셔서 그런지 지금은 갖가지 노인질환 약을 드시고 무릅 인공관절 수술까지하셔서 다리도 성치 않으신 데다가 뇌경색까지 와서 보행 워커에 의지해 걷는 모습을 보면서 공터에 버려진  녹슬고 구멍난 무쇠솥처럼 세월의 힘을 거스르지 못해 쇠잔해진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아련해져옴은 어쩔 수가 없다.

위 그림 문길동, 사진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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