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결 Nov 13. 2023

희망

힐링 에세이

[에세이] 희망

민병식


갑자기 매서워진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오후, 걷기 운동을 마치고 커피 숖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철아닌 분수대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휴일을 즐기려는 연인 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보도블럭의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던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온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떠나는 가을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듯 낙엽이 바람을 타고 날아 다니고 벌써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가 모래사장을 휘감듯이 노오란 은행잎이 거리에 수북이 쌓인다.


피아노 선율이 가득한 커피숍에서  음악소리를 더한 은은한 분위기를 즐기며 책을 읽는다. 감성이 풍부해지는 시간이다. 은행나무은 노랗게 물들어 참 보기좋은데  열매는 고얀 냄새가 나듯 휴일은 이렇듯이 여유로운데 출근하려면 진짜 곤욕스럽다. 삶이란 자연의 이치처럼 돌고도는 희노애락의 쳇바퀴같다.  살다보면 때론 좋은 일도 있고 화나는 일도 있고, 기쁜일 슬픈 일이 있는 거겠지만 때로는 인간이 감당하기 벅찬 고뇌와 시련을 주기도 한다.  하나의 고개를 넘으면 눈 앞에는 더 큰 고개가 있을 때도 있고, 견디지 못할 만큼의 시련이 온다 싶으면 한 고비를 넘기고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동안 힘들었던 일은 먼 과거의 일이 되기도하고, 추억이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공원 앞 을 걷는다. 제법 가을 색을 갖춘 광경이 예쁘다. 때이른 추위로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롱패딩을 꺼내입은사람 들이 눈에 뜨인다. 공원의 나무 들도 겨울채비를 하는 듯하다.  이렇게 겨울을 맞이하는 즈음이 되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곳, 심신이 지칠때 마다 찾곤 했던 나만의 휴식처가 생각 난다.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가 정겹게 인사를 하고 풀잎 위에 앉아 풀벌레가 들꽃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곳, 말없이 늘 같은 모습으로 반겨주는 늘 같은 자리에서 우뚝 흐르는 물살을 가르는 바위가 있는 곳,  돌돌돌 물이 흐르는 개울가가 보이는 곳에 동화 속 마을같은 예쁜 집을 짓고 조그만 정원에 빨강, 파랑 파라솔을 치고 그 앞에 아주 오래된 듯한 나무탁자와  의자를 준비하고 그곳에 앉아 차를 마시기도 하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하기도 하며, 집 앞에는 밤나무를 꼭 심어서 포근한 자연에 기대어 사는 마음을 담고 살고 싶은 곳이다. 나와 자연이 하나되는 상상, 생각만해도 가슴을 벅차게 하는 나의 케렌시아를 상상해본다.


뭉게구름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수놓고 있는 즈음

봄이면 연초록을, 여름엔 짙 푸른 녹음을, 가을엔 울긋불긋 계절따라 자신의 색깔로 갈아입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삶의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는 지금 계절의 어디쯤에 와 있을까 생각해본다. 몸은  복잡한 세상에 있으나 마음은 늘 자연으로 가고 있는 자연의 정원사가 되어 살고 싶은 마음,  그 꿈을 이루기위해  지금을 사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언젠가는 그곳에 가서 하늘거리는 들꽃에게 내 마음을 전하리라고 다짐한다. 너와 함께 할 오늘을 기다렸다고, 기다려 줘서 고맙고 많이 사랑한다고, 이제 앞으로 행복할 시간만 남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삶은 어찌보면 기다림이다. 식욕,성욕, 수면욕으로 시작하는 본능으로부터 원하는 것, 바라는 것,  가고싶은 곳, 쉬고 싶은 곳, 마음 속 이상향까지 모든 것은 기다림이고 그 길고긴 기다림을 반복하며 목적지에 도착하고 그 과정엔 인내가 필요하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위해 커피숍에서의 몇시간이 지겹지 않은 것처럼, 인생 후반을 위한 기다림을 배우고 있는 중인 나는 가슴에 늘 들꽃 한 송이를 품고 있다. 눈을 감고 커피를 마신다. 마치 무질서 하게 보이나 꼭 있어야할 자리에 있는 듯한 한 송이 들꽃이 되어 가을의 끝자리에 앉아있는 듯하다.


구름이 둥둥 떠다니며 저 멀리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갈 때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삶도 따라 흐르고 시간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를 환경에 따라 자신을 변화키는 계절로부터 배운다.  인생 후반을 바라보는 내 삶도 지금 이 시간 늦가을의 마음과비슷하지 않을까. 조금있으면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이고 꽁꽁 얼음 어는 겨울이 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환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추운 겨울을 버티어 내면 어김없이 새싹이 움트는 봄이 오듯 나 또한 인생 후반기의 봄을 다시 맞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그림 문길동
작가의 이전글 '밥 한 번 먹자'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