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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an 23. 2024

비둘기

감성 에세이 10

[에세이] 비둘기

민병식


자동차 보닛 위에 떨어진 비둘기의 배설물을 닦아낸다는 것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같은 겨울철엔 손도 시렵거니와 찬물로 닦아내기도 쉽지 않다. 아침에 세차를 하고 외출할 일이 있어 아파트 상가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워 놓았는데  비둘기 들이  자신 들의 놀이터인줄 아는지 한 시간도 안되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평화를 상징한다는 비둘기가 내 마음의 평안을 어지힌다. 집 앞에서, 길가에서, 도심 어디에서도 서성대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비둘기 들, 그들만의 영토를 구축하고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손짓 발짓으로 쫓아내도 그 때뿐 순식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쉴새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간을 조롱하는 듯하다. 그들이 도로에 싸놓은 배설물은 빗자루 질로는 어림도 없다. 물을 뿌리고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야 겨우 없앨 수 있을 정도인데 각종 음식 부스러기와 술취한 토사물을 먹고 그대로 뱉어놓은 공해와 중금속으로 가득한 오염 덩어리일 뿐이다.


날이 갈수록 비둘기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다. 오죽하면 비둘기 배설물 청소업체가 생겨나고 비둘기용 방충망이 나왔을까. 단체로 행동하는 그들은 사람 들을 위협하는 조폭의 위세를 가졌다. 이는 어쩌면 인간이 자연의 영토를 빼앗았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평화의 상징이었으며 전령으로도 이용되었던 비둘기, 인간과 서로 도와가며 어울려 살던 시대가 지나고 도시화,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발 붙일 곳이 없어진 지금, 언제 부터인가 인간  사회의 한 구석을 빌려 겨우 종족을 보존하던 약자에서 이젠 누구나가 피하는 무법자가 되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동물과 식물의 땅이었던 자연을 파괴한 댓가다.


비둘기는 인간과 공존하고 싶어서 도시를 떠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이 싫어하고 꺼려하며 돌보지 않는데도 왜 비둘기들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만 가는 것일까. 답은 하나다. 적당한 개체수를 유지할 수있게 해주는 천적이 없는 것이다. 생태계의 기본은 먹이사슬이다. 그 자연의 법칙을 인간이 깨어버린 덕택에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겨버린 비둘기는 옛날과 똑같이 그대로 살고 있는데 적이 없으니 계속 숫자는 늘어난다. 벌레와 곤충 대신에 각종 더러운 음식물 찌거기와 토사물을 공급하는 도시는 원래 그들의 땅이 었던 거다. 아파트  베란다를 그들이 침입해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신대륙 원주민의 신성한 땅을 강대국이 점령하듯 우리가 그들의 땅을 빼앗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푸다닥 거리며 한 떼의 비둘기가 아파트 정자 앞에 모여든다. 부슬 부슬 비는 내리는데 배는 고프고 이리 저리 두리번 거리며 먹을 것을 찾는 듯하다. 바닥을 콕콕 쪼아대며 혹시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인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한 시도 쉴 틈이 없다. 그들 중 어떤 녀석은 다리를 절룩 거리고 어떤 녀석은 발가락이 잘려 나갔다. 그들의 집에선 혹시라도 새끼 들이 목이빠지게 어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비둘기 뿐만 아니라 우리는 도심의 이런 야생동물들과 동거를 하고 있다. 길 고양이, 유기견,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사람에게서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긴 동물들, 누군가 도와주지도 않고 누군가 쳐다보지도 않고 늘 생명을 위협받는 환경에서 그나마 마음씨 좋은 사람을 만나 사료라도 얻어 먹으면 다행인 삶의 주변인 들이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무정한 인간 세상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차례가 있을까. 결국 하루 하루 먹고 살아야하는 생존의 절박함은 그들이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이유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들처럼 될 것이다. 초고령화시대의 노인이 되어 쓸모가 없어지고 아파서 스스로 거동을 못할 때가 오고 마치 전쟁터에서 후퇴할 때 부상당한 병사를 그냥 놓아두고 가는 것처럼 버림받는 소모품이 될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전 '비둘기 처럼 다정한 사람들 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로 시작되는 비둘기 집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그런 비둘기 집은 이제 세상에 없다. 자기들 끼리라도 싸우지 않고 다정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한참을 먹이를 찾던 비둘기의 눈이 슬퍼보인다. 순간 과자라도 사서 던져줄까  하고 싶은 마음에 일어서려다가

얼아전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현수막을 본 것이 생각나 안되겠다는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 비둘기와 눈이 마주친다.


''우리를 유해조수로 만든 건 인간들이고 나에겐 당신이 유해인간으로 보인답니다"


고 말하는듯 하더니 푸드득 깃털을 날리고는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그렇다. 비둘기에게 나는 자신 들의 영토를 빼앗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적반하장의  약탈자일 뿐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비둘기와 인간사이에만 있었까.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음에도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갖으려는 욕심과 범사에 감사가 없는 불만, 그리고 내 것이 더 많다는 교만으로 뭉쳐 내 것만 중요시하려든다. 바로이 마음 들이 일상과 평정심을 방해하고 나아가서 스스로를 망치게하는 하루빨리 잘라내야할 웃가지이다. 살아가면서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을 비우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채워 넣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결심은 늘 수시로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가리는 세상, 내 삶의 줄기에 대해 생각한다. 입지도 않는 옷을 아깝다고 망설이면서 옷장에 몇 해동안 모셔두고 있는 것처럼 과감히 없애버려야할 쓸모없는 욕심의 가지를 붙잡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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