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하면 늘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어린 시절 고향에서 맞은 대보름날의 기억이다. 오곡으로 찰밥을 짓고 가을에 말려둔 호박, 가지, 고사리, 도라지 등으로 나물을 만들어 먹고 부럼을 깨문다. 더위를 팔고 윷놀이를 하고 달 집을 태운다. 밤늦도록 들판에서 논에서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고 달이 동그랗게 여물면 마을 사람 들 모두가 달맞이를 하며 소원을 빌었다. 설, 한 가위와 더불어 우리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였던 대보름날 풍속이다. 정월 대보름에 지어 먹는 오곡밥에는 한 해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쌀, 조, 수수, 팥, 콩 등을 섞어 짓는데 예로부터 대보름날 아침 일찍 오곡밥을 먹어야 농번기에 부지런히 일할 수 있다고 여겼고 조금씩 나눠 대보름날 하루에 7번에서 9번 먹는데 이는 한 해 동안 부지런하게 일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대보름에 어머니께서는 오곡밥과 나물을 먹어야 복을 받는다고 꼭 해주시곤 하셨는데 자식 사랑이 듬뿍 담긴 그 밥 덕택에 지금까지 건강히 잘 지내는 듯싶다.
밤이 되면 아이 들은 전선줄에 매단 깡통에 불을 집어넣고 돌리던 쥐불놀이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마구 돌리다가 하늘을 향해 높이 던지기도 하고 잘못 돌려서 옷을 태워먹기도 하고 논 한구석에 쌓아 놓은 볏단을 홀랑 태워 먹기도 했다. 그 시절엔 야간 통행 금지가 있어서 자정까지 바깥에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그 날 만큼은 밤늦도록 놀아도 어른들의 잔소리가 없는, 즉, 지금으로 따지면 놀이공원 야간 개장 같은 거였다. 쥐불놀이가 끝나갈 무렵 달맞이 행사가 열린다. 가장 빼놓을 수 없는 풍속 중 하나인 달맞이, 농경 시대의 달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신비의 세계, 그 달빛 아래 사람들이 모여 그 작던 초승달이 커다랗게 보름달로 부풀어 커지는 것만큼의 풍년을 빌고 다산을 빌고 각자의 소망을 빌었다. 다른 재미있는 풍속은 부럼 깨기다. 정월 대보름 달맞이가 밤을 장식한다면 부럼은 아침 일찍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정월 대보름 날 이른 아침에 한 해 동안의 각종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를 튼튼하게 한다는 뜻으로 날 밤, 호두, 은행, 잣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풍속이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잠들기 전에 부럼을 꼭 머리 맡에 준비를 해주셨는데 부럼을 해마다 깨서 그런지 중년의 나이에도 피부는 매끈한 편이다.
요새는 찰밥을 짓는 집이 많지 않다. 아니 사서 먹는 집조차 드물 정도다. 아이들은 ‘패스트 푸드’를 더 좋아하기에 어느 집이건 오곡밥을 하기에 부담스럽다. 부스럼이 걱정되고 이가 튼튼해지라고 부럼을 깨물던 풍습도 사라져간다. 치과에서 이를 빼고 치료 하고 ‘임플란트’까지 하고, 부스럼은 피부과 병원이 있고 바르기만 하면 낫는 연고가 있는데 굳이 부럼을 깨물지 않아도 된다. 달맞이도 그렇다. 이제 더 이상 달이 동경의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이 된 지금 달맞이는 이제 4차 산업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설은 가족 단위의 명절이지만, 대보름은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즐기는 공동체의 명절이었다. 마을구성원들이 서로 모여 줄다리기, 차전놀이, 윷놀이를 함께 하였고 마을의 번영과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른다. 1인가구가 늘어나는 시점일 뿐더러 컴퓨터 게임이 있으니 무슨 윷놀이가 필요하겠는가. 노인정에 말가신 어르신들의 심심풀이일 뿐, 지금 세대는 선호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대보름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는다. 대보름 보다는 ‘발렌타인 데이’. , ‘화이트 데이’가 더 소중하고 ‘빼빼로 데이’가 더 중요하다. 서로 협력하고 사랑했던 공동의 마음 들이 이제 개인 선택의 길로 쭉쭉 찢어진 듯 마음이 혼란스럽다. 젊은 후배들에게 나 때는 이런 것이 있었는데 점차 사라지니 아쉽다고 하면 꼰대소리를 듣기 십상인 시대, 도시에서 연날리기는 어렵고, 쥐불놀이는 당연히 안 되고, 옛 것을 지키기 위해 '오곡밥 데이'라도 만들어야 할지 세시풍속의 의미가 인간의 따뜻함을 공유하고 함께 잘 살고자 하는 공동의 번영에 있다고 본다면 점점 휴머니즘의 마음이 잊혀져 가는 사회가 되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예로부터 내려온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소중한 자산인 전통문화를 계승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코로나 19로 인해 외출하기도 꺼려지는 지금, 어머니께서 해주신 오곡밥이 그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80이 넘으셔서 이제는 나물 삶는 것도 힘에 부치시는 어머니, 부럼을 깨물 이도 성치 않으신 아버지께 이번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나물을 대접해 드리고, 함께 윷놀이도 하면서 어린 시절 온 동네가 함께 따뜻했던 그 날처럼 ‘오곡밥 데이’를 즐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