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요양병원에서 외출을 시켜 답답함을 달래드린 후 다음 주 외출 시까지 잘 하고 계시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한 터 였는데 일요일 오후에 어머니가 계신 요양 병원의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서 끼시는 보청기 끝에 달린 이어 캡 같을 잃어버렸는데 귀로 들어갈 크기도 아닌데 어머니는 귓속으로 들어갔다고 하며 기어코 이비인후과를 가야한다고 하신단다. 월요일은 하루 종일 중요한 출장이 있어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기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모시고 요양병원 근처 이비인후과 찾아서 진찰 좀 받아봐. 아빠가 도저히 시간이 안나. 부탁할께"
진찰결과 어머니의 귓 속에는 귓밥만 가득 있었다.
월요일 오후다. 출장 중 병원에서 또 전화가 왔다.
"환자 께서 면봉으로 귀를 후비다가 피가 나오고 진물이나는데 이비인후과 가자고 하시네요."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큰 소리가 터져나왔다.
"또요, 아, 진짜 우리 어머니 해도 해도 너무 하시네. 도대체 난 회사도 다니지 말라는 건지."
속에서 욱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병원에서 혼자 화장실가면 넘어진다고 꼭 간병인과 함께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기어코 고집을 피우고 혼자화장실을 가다 넘어지면서 세면대에 앞니를 부딪혀 치과치료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이비인후과라니 그것도 이어 캡이 귓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보청기 수리까지 다 해서 마무리 된 줄 알았더니 기어코 또 사고를 치다니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고 한숨만 나온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할 곳이 없어 혼자서 한탄만 하게된다.
"에이!! 아! 진짜 미치겠네!"
화를 가라 앉히는데 한참동안 속을 삭여야했다.
노인이 되면 애가 된다더니 틀린 말 하나 없다. 힘이 없으니 링걸 놔달라, 허리가 아프니 허리 주사 맞으러 가야한다 등 쉴 새없이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중이라 비급여로 처리되기 때문에 평소 몇천원이면 될 것을 그 비용의 수십배에서 수백배까지 나오고 거기에 요양병원 입원비, 간병인비, 재활치료비까지 합하면 수백만원이 훌쩍 넘는다. 요즘은 간병인 보험도 있고 각종 보험을 들어놓았다면 도움을 받겠지만 부모님 시대엔 그런 것이 없었기에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데다가 어머니라도 얌전히 병원에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안되니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여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어머니 돌봄에 지친 요즘 분노 제어가 되지 않는다. 매주 1회씩 외출을 시켜 부모님 댁으로 모시고가 아버지도 만나고 푹 쉬시게 하고 맛난 음식도 사드리고 면회도 자주가는 편임에도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고 싶다는 말 뿐 늘 불만이고 혼자 계시는 아버지도 수시로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는지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인데 어머니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다.
초고령 사회 노인 돌봄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한 자식의 도리이기도 하고 학창시절에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는 효에 대한 중요성을 귀가 아프게 들었지만 효를 행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운 것임을 깨닫는다.광복절인 오늘도 어머니 외출을 시켰다. 귀에 넣는 약도 간호사가 넣어주고 보청기도 끼지 않았단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외출을 한다. 아버지 댁으로 가는길 어머니가 좋아하는 새우튀김과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수육을 산다. 어머니가 새우 튀김을 맛나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언제까지 새우 튀김을 드실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가슴이 아프고 이젠 늙어서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든 모습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사람 마음 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그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내게도 적용되어 어떨 때는 연민과 사랑으로 부모님을 대하고 어떨 때는 짜증과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오늘은 절대 짜증내지 않고 웃음으로 너그럽게 대해야지 하고 걸음걸음마다 다짐하면서 어머니를 모신다.
'나도 늙으면 부모님처럼 되겠지'
그리 생각하니 서럽다. 어머니도 서럽겠지. 요양병원에서 하루 종일 침대 생활을 해야하고 옛날처럼 걷는 것도 씩씩하게 걷고 싶고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고 싶은데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점점 쇠약해져만 가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슬프고 서러울까. 어머니의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이거늘 화를 주체 못하는 나도 서럽다.
쌀국수를 드시고 싶다고 하여 시켜드렸더니 엄청 잘 드신다. 화장실 사용에 기저귀에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낮잠도 한 잠 푹 주무시게하고 요양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토요일 또 올게요. 잘 쉬고 계셔요."
과일과 오이와 아삭이 고추를 간병인 아주머니와 나누어 드시라고 한 아름 사서 보낸다.
자연에서 나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수레바퀴가 오늘도 이렇게 흘렀다. 어느 날의 삶은 무겁고 자식으로서의 도리도 형언할 수 없이 무겁다. 내가 태어나 아가 때부터 성인이 될때까지 돌보아준 부모님의 노고에 대해 이제 그 청구서를 받았다. 이제 내가 마음으로 갚아야할 차례다. 효도가 아니라 당연히 돌려드려야할 의무임에도 내 마음은 여러 감정이 혼재되어 소용돌이 친다. 안타까움, 안쓰러움, 짜증과 피로함, 걱정과 귀찮음 등 갚아 나가는 날 들이 부대낌과 스트레스로 가득하리라는 것에는 예상하고 있지만 자식으로써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스스로를 독려하는 날이다.집으로 돌아오는길 잘가라고 손을 흔드는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려 발걸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