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에세이
[에세이]춘천가는 날
한결
요새 며칠 폭염이 기세를 떨치고 주말에 바빴더니 쉬지를 못해서 그런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어제 저녁 운동도 힘에 부대끼는걸 억지로 겨우 진행했다, 에어컨 없이는 버틸 수가 없는 날이 계속되고 출근길 연신 하품만 나온다. 오늘은 춘천으로 출장을 간다. 서울 춘천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용산역에서 ITX가 개통되어 다니기는 빨라지고 수월해졌지만 옛날에 기차나 완행버스를 타고 가면서 바깥풍경을 감상하는 운치는 없다. 더군다나 자동차를 이용해서 가는 길은 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달려야하는데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그 터널 들을 통과하길 몇 차례 보이는 건 산, 도로, 터널이 수차례 반복되고 멀리 춘천 시내가 보인다.
춘천은 내겐 추억의 도시다. 대학시절 MT며 여친과 놀러갔던 강촌, 15년전 인사발령으로 3년간 있으면서 가족을 떠나 혼자지냈지만 잃은 것보나는 얻은게 많은 낭만이 가득한 호반의 도시다. 더구나 인근의 도시 홍천, 화천, 영월, 정선 그리고 동해안까지 연결 해준 자유의 도시였다. 춘천은 나의 아름다웠던 청춘 시절에는 물감처럼 내 가슴을 천연색으로 물들였고 집을 떠나 있을 때는 언제든 함께 할 수 있는 자연과 춘천 만이 가진 분위기로 한 때는 춘천으로 이사가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나의 케렌시아 같은 곳이었다. 예전에 경춘선을 타려면 직접 청량리 역으로 가야했다. 청량리역 광장 시계탑 앞에서 누군가하고 만나기로 하고 약속을 정하고 나가면 시계탑 앞에는 늘 청춘 들로 북적북적했다. 매표소 앞에서 표를 끊기 위해 늘어선 줄은 춘천에 가면 무엇인가 설레는 일로 가득할 듯한 들뜬 표정과 통일호,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고 계란과 사이다를 먹으며 놀러가는 길은 친구끼리 놀러가는 즐거운 웃음소리와 열기, 애틋한 사랑의 눈빛을 교환하며 손을 꼭 잡고 있는 연인들의 사랑이 늘 가득했다. 통일호, 비둘기호 열차 바퀴는 젊음을 싣고 낭만을 싣고 달리고 또 달렸다. 버스를 타고 가는 국도도 무지 예뻤는데 청평을 지나며 기름집, 방앗간 등 정겨운 시골 풍경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가평이 나오고 강줄기 따라 수상스키와 보트를 타며 물살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요즘 같은 불볕 더위는 저리가라 그 광경에 취해 창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차도 아니고 버스도 아닌, 자동차 안, 예전과는 완전 달라진 풍경을 지나쳐 목적지에 도착한다. 날이 더우니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지면서 문득 춘천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가끔가던 소양강이 바라다보이는 커피숍은 아직까지 있을까. 그 때 저녁노을과 교차되던 소양2교의 아름다운 불빛이 생각난다. 회사를 마치면 춘천의 저녁을 가슴 안에 가득 담고 걸어서 공지천까지 다녀왔던 여름밤도 생각하고 출장이 끝나고 잠시라도 짬이 주어졌으면 커피라도 한 잔하고 여유있게 돌아가고 싶은데 바로 복귀해야하는 촉박한 일상이 못내 아쉽다.
춘천, 15년 전과 지금은 많이 바뀌고 달라졌지만 포근한 감정과 따뜻한 여운은 그대로다. 3년간 춘천에서 머무를 때 주중은 춘천에 있다가 금요일 저녁에 집에 왔다가 일요일 저녁 춘천으로 다시 가는 생활이 반복되었지만 일요일 저녁 춘천으로 향하는 길은 늘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춘천을 생각하면 갑자기 가방을 싸고 떠나야할듯 마음이 동한다. 아마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와 청춘의 또다른 말인 낭만, 아름다웠던 추억 들을 그곳에 놓고 왔기 때문이 아닐까. 춘천이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봄내다. 봄의 냇가, 얼음을 녹이고 쫄쫄 흐르는 봄소식, 추운 겨울을 지나 이제 봄이왔다는 소식을 알리는 것 만큼 반가운 것은 없듯이 춘천 소리를 들으면 늘 정겹고 반갑다. 단편의 사랑 영화같은 그 옛날의 순수함으로, 살아옴의 수많은 기억들이 소멸한 머릿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그리움으로, 평범한 풍경조차도 예쁜 그림 한 편으로 여행 한 번 다녀오고 닭갈비 먹으러 축제 한 번 다녀온 점점 흐릿해지는 지나가는 궤적이 아니라 사라진 경춘선 기차가 지금도 내 추억 속에서는 경적을 울리며 달리듯이 가슴 한 켠에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하고 고개를 내미는 그리움이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이다. 예전에 많이 다녔던 먹자 골목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많은 간판 들이 새롭게 바뀌었지만 예전에 있었던 반가운 간판 들도 보인다. 많이변했지만 그 때 그 의 길은 그대로다. 예전에 기억들과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고 난 순대국밥 집에서 배불리 한 끼 식사로 춘천의 추억을 먹는다.
회사를 퇴직하면 큰 맘 먹고 와야 올듯 말듯 일부러 이곳을 찾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행복했던 기억들이 쉽게 잊혀지지 않듯 가슴에 남아 그 때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고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 소중함으로 남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