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에세이
[에세이] 버킷리스트
한결
그동안의 불볕 더위에게 화풀이라도 하듯 억수같이 비가내린다. 새벽녘 천둥과 번개를 데리고와 잠을 깨우고 마치 자신의 포효를 봐달라는듯 막무가내다. 어쩌면 비가 내린다는 표현보다는 온 세상을 덮어버린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최근들어 비가 이렇게 많은 날 들은 처음인듯 한데 출근을 위해 집 밖으로 나오자 마자 신발이 흠뻑 젖었다. 들이 붓는 비에 몸이 젖듯 신발 속의 세상도 뒤죽박죽이다. 조금만 덜 내렸으면 운치가 있었을텐데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싫어도 빗속으로 흡수 될 수밖에 없는 날이다. 비 덕분에 더위는 조금 누그러졌지만 대신 꿉꿉함이 남았다. 몸의 기운도 날씨를 따라가는지 무겁다. 그러나 비는 반갑지 않을 때도 많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자원이다. 너무 지나치게 내려 하천이 범람하고 수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빛, 불, 공기 등과 함께 없어서는 안될 인류의 생존 필수요소 이기도 하다.
비가 싫어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싫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이 있을까. 삶에 있어서 자신이 하고싶은 방향대로 모든 목표를 이루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업도 그렇고 학력도 그러하며 가정 또한 그러하다. 일류대학을 가고 싶다고해서 모두가 갈수는 없고 모두 의사, 판사가 될 수는 없으며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개인의 능력, 집안 사정, 부모의 지시, 때로는 우연적 판단 등 내 삶의 방향을 순신간에 좌우하는 요소들이 너무도 많기에 마음과는 달리 삶은 상황을 따라가는 수가 많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과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타협이 없는 삶은 불만과 한탄, 패배의 감정을 가져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버킷리스트가 삶의 목적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 살아있을 때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의미하는데 누구나 몇가지씩 버킷리스트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버킷리스트가 평생을 다 바쳐 이루고 싶은 이상이나 마음에 품고있는 거창한 목표는 아니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데 위안이 되는것, 해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므로 실현가능한 버킷리스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내게는 현재 세개의 버킷리스트가 있다. 첫째는 은퇴 후 유럽여행이다. 둘째는 동남아 각국 한달 살기다. 베트남을 비롯해 그 인접국가인 라오스, 캄보디아 등 여름을 좋아하는 나의 특성상 각 나라의 여름을 즐기고 싶다. 기후가 비슷은 하겠지만 문화적 특성은 조금씩 차이가 날 것이므로 바닷가, 도시, 시골 등 장소에 차별을 두고 지낸다면 기행문 소재도 되고 재밌는 경험이되지 않을까 한다. 세번 째는 고향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하는 삶이다. 어렸을 때 난 농부가 되고 싶었다.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는 부모님의 향학열로 서울로 전학을 와서 지금의 터에 자리를 잡았지만 아마 계속 고향에 살았으면 농업관련 공무원이나 농촌지도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은 아니고 자연과 벗삼아 5도 2촌의 삶을 사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인생 가운데 타협을 해서는 안될 것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는데 난 그것을 남녀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꼭 원하는 사람과 사랑해야함이 원칙적인 지고지순의 법칙을 나이에 밀려, 환경에 밀려 혹은 대안이 없어서 순간의 판단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고 살아간다면 분명 분란이 있다. 부모님이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던 시절도 있었고 정략결혼도 있었으며 하룻밤을 보냈다고해서 책임져야하는 시대도 있었다. 이제 열번찍어 안넘어 가는 나무없다고 계속 구애를 하면 스토킹이 되고 거기에 넘어간다는 것도 자기 주체성을 상실한 사람이다.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 중에 한 여성이 있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는 어떤 이슈도 금방 소문이 나게 마련인 지역사회에살고 있는 분이었는데 그녀는 참 아름답게 생겼고 도시에서도 분명히 먹힐 외모였다. 그러나 그녀는 고향에서 나고 자랐고 도회지에서 생활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결혼 적령기가 되자 마을의 남자들 중 그녀의 친오빠 친구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단다. 그러나 그 남자는 100kg가 넘는 비만체형으로 그녀가 계속 거부했으나 그 남자는 몇 년을 구애하며 끈질기게 따라다녔다고 했고 결국 결혼을 재촉하는 부모의 압력과 저 남자만큼 내게 잘해줄 사람없다는 판단으로 결혼을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결혼 후에 남편과 잠자리가 그렇게 싫다고 했다. 잠자리 문제로 다투는 일도 많았고 그녀는 남편을 피하기에 바빴다고한다. 이혼을 하고 싶었으나 이혼을 터부시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가 겁이 났고 하나 있던 아이 문제로 이혼을 택하지 않았는데 겨우 버티고 있던 중 남편이 하던 자영업이 잘 되지 않으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자 부부사이에 다툼이 잦아졌고 결국 무늬만 부부가 되었으며 그녀는 남편과의 잠자리가 극도로 싫었기에 차라리 그게 좋다고 했다.
사랑은 남녀 공히 서로 눈이 멀어야한다. 그래야 어려움에 닥쳤을 때 자기 사랑에 대한 책임도 지는거다. 이거 저거 따지는 조건도 중요하지만 조건을 넘어서 함께 살아가면서 수많은 단점과 미움을 극복하는 것이 사랑이며 버킷리스트가 삶의 최고 목표가 될 수 없듯 얼추 맞추어가는 사랑은 이미 금이 가있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미움이나 서운함조차 생기지 않는데 정으로 살아간다는 게 행복할까.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정도 생기는 것 아닐까. 가치관, 중심, 안정, 배려 등은 사랑에서 나온다. 진정한 사랑이 없는 남녀관계는 이혼한 상담가가 위기부부를 해결하기 위해 부부 상담을 하는 꼴이다. 비오는 주말, 큼직한 빗방울 하나를 잡아 그것에 비치는 나의 생각을 투영해 본다. 버킷리스트로 사랑을 가릴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 안에 있는 버킷리스트는 절로 행복하기 마련이다. 스스로 행복한가, 아닌가를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