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 예방 작전

한결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삼식이 예방 작전

한결


퇴직이 1년도 채 안남았다. 올해의 하루 하루가 직장생활의 마지막인 셈이다. 난 집에서 용돈을 받아 생활한다. 즉, 경제권이 없다는 뜻이다. 경제권이 없다는 것은 집에서 힘이 없다는 뜻도 된다. 집에서 힘있어야 뭐하겠느냐고 하겠지만 그런 힘이 아니다. 한 번은 큰 아이가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는데 경비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 부족한 경비를 아내가 채워준다. 난 내 용돈을 아껴 커피값 정도의 성의 표시를 하지만 그건 표시도 나지 않는다. 만일 백만원을 보태주었다 치면 그중 오십만원은 내가 번 수익에서 나가는 것인데 아이 들은 지 엄마에게만 고맙다고 하고 엄마 선물만 사온다. 난 전부터 아이들 생일 등 기념일에는 당연히 부모로써 용돈이나 선물을 주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어버이날에도 아이 들에게 부모가 되게 해줘서 고맙다고 오히려 용돈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해왔기에 내 선물이 없다고 해서 서운하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받아야할 당연한 대우와 권리를 받지못하고 갖지 못하는 듯 해서 그 점은 조금 껄쩍지근 했었다.


작년에 베트남 다낭, 대만 타이뻬이, 베트남 나트랑 이렇게 해외 여행을 다녀왔는데 다낭에 갔을 때 일이다. 여행 시기는 7월이었는데 한국의 무더위 보다 더 더운 날씨였다. 야시장을. 다닐 때였나 목이 엄청 말랐는데 노점에서 사탕수수 음료를 파는 게 보여 아내에게 사먹고 싶으니 돈 조금만 달라고 했는데 한사고 주질 않는거다. 아이 들 외삼촌 부부와 함께 간지라 그 자리에서 화를 낼 수도 없고 꾹 누르고 참았다. 12월에 나트랑 여행을 가기 전 작심하고 말을 꺼냈다.


"여행비와 가서 쓰는 돈은 서로 반반 씩 부담하는건데 나한테 음료수값 몇 푼도 안주는 이유가 뭔지, 아끼려고 하는건 이해하지만 그럴려면 여행을 가지 말아야지. 아예 안 가면 몇 백 만원 이상을 아낄 수 있는데, 유독 나한테만 이러는 이유가 뭔가. 그렇게 아끼고 싶으면 매일 같이 오는 택배부터 멈췄으면 하고 이번에 혼자 돈을 주머니에 꿰차고 내가 쓸 돈을 주지 않으면 난 다시 당신과 여행 안갈거다. 여행가서도. 몇 푼 안 되는 그 잘난 용돈에서 쓰란 말인가. 지난 번 여행에도 내가 한국 돈 얼마를 썼는데 내가 쓰는건 안 내 용돈이라서 안 아깝나. 보니까 작년에 일본 갔을 때는 당신은 마구잡이로 사들이더구만. 앞으론 내게 상의하고 써라"


이렇게 던져 놓았더니 작년 12월 나트랑을 갈 때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돈으로 100만동을 용돈으로 준다. 그래봐야 한국 돈으로 5만원 조금 넘는 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아이 들이 커피도 사주고 음료도 사주었기 때문에 도로 돌려주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다녀도 이 정도인데 퇴직 후 벌이가 없으면 삼식이가 되는 건 아닌가. 빈 껍데기만 남은,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되어 아내 눈치만 보며 사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된다. 각자의 돈을 관리하면서 필요한 생활비 등을 반반 씩 나누어 분담하는 부부도 많은데 난 무슨 생각으로 카드며 월급통장이며 다 맡기고 체크카드만 달랑 한 장 있을까.


퇴직 후 용돈 마련을 위해 투자를 좀 해야겠다 싶어 쌈지 돈을 탈탈 털어 워밍업으로 금을 조금 샀는데 왠걸 사자 마자 급락이다. 이번에는 달러를 사기로 하고 매입을 했는데 이것도 손해를 봤다. 엔화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 용돈으로 쓰려고 조금씩 이곳 저곳 찔러보지만 난 아무래도 난 똥손인가 보다. 은퇴를 앞둔 중년의 남성은 슬프다. 힘 떨어지고 돈 떨어지고 연금으로 생활하기엔 밥 먹기도 벅차다. 모임도 많고 취미 활동도 있는데 그것이 다 돈이다. 노년을 앞두고 있는 즈음, 장래계획은 고향에서 안빈락도의 삶을 살고 싶지만 5도 2촌이든 4도 3촌이든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 듯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야하는데 구축비용이야 어찌 된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소소한 용돈은 쥐고 있어야한다. 이거 잘못하면 농장에서 일당 일을 하게 생겼다. 내가 죽어라 벌어놓은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준비를 제대로 못하면 꼼짝없이 삼식이가 될듯한 지금 내 생각과 포부와는 달리 빈곤의 먹구름이 몰려올 듯해 우산을 찾지만 보이질 않는다.


부부도 엄연히 남이다. 내 부친의 경험으로 볼 때 경제권을 누가 갖고 있느냐에 따라 남자의 지위가 결정된다. 후배가 자격증 공부를 하러 도서관을 가는데 주말에 은퇴자로 보이는 사람이 옆 자리에서 아침에와서 저녁까지 휴대폰으로 고스톱만 하고 있더란다. 돈없는 남자의 노년은 초라하고 불쌍하다. 나의 삼식이 예방작전, 아무래도 신경을 좀 써야할 듯하다. 힘을 내보자고 다짐하는 월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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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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