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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pr 25. 2020

국화와 칼 / 독후감87

일본 문화의 틀

 ‘일본인은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일본인은 특이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표현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생각과 문화의 틀이 별도로 있다.




 ‘감사합니다’라고 알고 있는 아리가토 有難う 의 한자를 보면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Oh, this is difficult things) “를 의미한다. 호의나 친절을 받은 것에 대해서 ‘나는 이제껏 베푼 것이 없는데 상대방에게 신세를 져서 곤란하다'는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혹은 ‘고맙습니다’라고도 쓰이는 스미마센 済みません 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것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뜻이 된다. 당신의 은혜를 받았고 당신에게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 놓인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호의나 은혜를 받음으로써 느끼는 부끄러움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런 이유로 길거리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은혜를 입히는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제까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과 받는 것 모두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친절을 받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면목이 없다고 하는 민족이 일본인이다. 선행의 채무자가 되는 것이 대단히 괴로운 일이다. 이것이 일본의 미덕인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따라가야 일본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인도 사람인지라 호의나 은혜가 싫은 것은 아니다. 나의 계층적 조직 속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이든지, 나 자신도 똑같이 베풀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이든지, 나를 숭배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안심하고 신세를 진다. 하지만,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을 때에는 참기 힘들 만큼 어려운 것이다. 내가 글에서 사용한 호의, 친절, 은혜, 선행의 단어들은 모두 온恩 의 대체어로써 외국어 번역이 어려우며 의미를 명료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일본인은 온을 베푸는 것은 덕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온을 갚는 것이 덕행이라 생각한다.


 1945년 8월 14일, 죽창竹槍 하나로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을 맹세했던 일본인은 천황이 라디오로 일본의 항복을 선포하자 전쟁을 마쳤다. 한 외국인 기자가 서술한 바와 같이,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며 착륙했지만, 점심때는 총을 치워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렸다. 즉, 일본인은 비록 항복 명령이긴 했지만, 명령을 내린 것이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패전에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忠였다.

 전쟁과 군국주의였던 주忠 의 내용이 평화로 변경되자 일본인은 그때까지 와는 정반대로 외국인에게 협력하는 양상을 보였다. 주는 천황, 법률, 일본국에 대한 의무인 것이다.


 기리義理 를 고려하지 않으면 일본인의 행동 방침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리에는 옛날에 받았던 친절에 대한 답례에서부터 복수의 의무에 이르기까지 서로 이질적인 여러 잡다한 의무가 복잡하게 포함되어 있다.

 일본인은 복수의 주제를 죽음을 건 충절과 마찬가지로 흔쾌히 찬양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기리였다. 충절은 주군에 대한 기리였고, 모욕에 대한 복수는 자신의 명예에 대한 기리였다. 일본에서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넓은 의미는 같으나 두 가지가 상충할 때, 즉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복수를 선택하는 것이 주군에 대한 충절에 어긋날 때 어느 하나도 변제될 수 없다. 개인적인 복수를 단행하고, 충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하며 고수했던 도쿄 2020 올림픽이 취소되면서 일본이 궁금했다.

과거의 전쟁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는 일본이 궁금했다. 

신사 참배를 고수하는 일본이 궁금했다.

 일본은 계층 사회였다.

세대와 성별과 연령에서 오는 특권도 크고, 천황부터 ( 쇼군 > 다이묘 > 사무라이 > 농민 > 공인 > 상민 ) 천민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규정된 형태로 실현된 봉건시대의 계층 사회였다.

정치, 종교, 군대, 산업에서도 각각의 영역이 신중하게 계층으로 나뉘어 있어 ‘알맞은 위치’가 보장되어 있는 동안 일본인은 불만 없이 살아간다.

 이와 같이 계층의식을 지키고 일본인 서로서로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도덕적인 행동과 규범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동기와 고결함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위에 언급된 온恩, 주忠, 기리義理 를 갖고 있는 일본인의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도덕 체계와 그들만의 규범들을 외국에 수출하려 했을 때 (전쟁을 일으켰을 때) 다른 국가들은 당연히 그런 도덕률이 없을뿐더러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력면에서 쌓아 올린 노력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결국 일본인들은 180도 전환하여 평화적인 처세술을 선택했다. 그들은 ‘국화(평화)와 칼(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징으로 표현될 정도로 특이하지만 그들의 방식이 틀리진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은 일본인이나 일본문화가 이상하기보다는 아베 총리 개인의 정치적 탐욕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미국의 루스 베네딕트라는 문화인류학자에 의해 쓰였다.

역자 서문에 보면 저자는 일본을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이유로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보다 엄밀할 수도 있는다는 가능성을 입증함으로써 학문적 객관성을 얻었다고 이야기한다. 학문적 객관성까지는 판단하기 힘들고, 미국인 저자가 신기할 따름으로 일본에 대해 저술하고 있는 내용들을 이웃나라에 사는 한국인인 내가 읽어보니 어렴풋했던 내용들을 명확하게 해주는 부분들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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